일러스트=이철원

[김철중의 생로병사] 도쿄서 지내보니… 고령 사회는 개성대로 살아볼 기회

류진창2 2019. 2. 26. 14:38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입력 2019.02.26 03:14


보험사 중역 은퇴한 '건강 전도사' '樂夢' 다이어트, 7분 스트레칭 설파
60대 시인 등단, 70대 화가 작품전즐겁게 늙어가는 동네 클럽 20만곳
관심과 느긋함, 근육·치아 남았는데 해보고 싶은 것 한번 해보자

올해 69세인 일본인 고다 고이치씨는 '건강 전도사'다. 의사는 아니지만, 자기만의 건강법을 개발해 일반 대중에게 전파한다. 그러길 7년째다. 강연회도 열고, 다이어트 책도 내고, 유튜브에 동영상도 올린다. 건강관리와 담쌓고 지내던 자신이 건강관리가 직업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원래는 잘나가는 보험 회사 중역이었다. 올해의 최우수 직원상을 몇 차례 받은, 일만 생각하면서 살아온 중년 남자의 삶이었다. 반듯한 양복과 얌전한 넥타이가 교복 같은 생활이었다. 그러다 육십이 넘으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운동 부족과 잦은 회식에 점점 체중이 늘면서 당뇨병이 생겼다. 이어서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메니에르 귓병이 왔다.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집에만 있게 되자, 우울증이 밀려왔다. 소파에 누워 하루가 한 달보다 긴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이러다 죽겠다 싶어 몸을 움직였다. 누운 채 스트레칭을 하고 살며시 일어나 앉았다 섰다를 했다. 신체가 정신을 바꾼다고 했던가. 몸을 부리자 흥이 생겼다. 자기만의 운동 방식을 찾기 시작했고. 먹는 것도 바꿨다. 살이 빠지고 근육이 붙었다. 언뜻 보면 몸 잘 만든 50대로 보인다. 그렇게 해서 체험형 건강 설법자가 시작됐다.

그가 '겐키(元氣·원기)'를 불어넣는 방법은 독특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침대에 누워서 7분간 다리를 꼬고 젖히고 발을 흔들며 하체 스트레칭을 한다. 체온이 올라서 생기 나는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체온이 오르면 면역력도 좋아진다. 신문지를 돌돌 말아 만든 봉을 양손으로 잡고 머리 위로 올려 팔과 다리 '더블 스쿼트'를 한다. 근육과 균형을 추구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단백질 섭취를 위해 생선과 두부 같은 콩 식품 섭취를 권장한다. 일본의 연구에 따르면, 생선과 콩 섭취량은 건강 수명 길이와 일치한다. 양질 단백질이니 나이 들수록 챙겨 먹어야 한다. 고다 고이치씨의 먹는 방식은 특이하다. 입에서 30번 천천히 씹는다. 고령이 되면 단백질을 먹어도 소화 흡수율이 떨어지는데, 이를 올릴 수 있다. 생선을 먹으면서 바다로 나간 어부에게, 실어 온 트럭 운전사에게, 식당서 조리한 주방장에게 "아리가토"(고맙습니다) 하며 감사의 말을 곱씹는다. 몸을 쓰면 몸을 쓴 발을, 머리를 쓰면 머리 쓴 뇌를 칭찬한다. 그는 이런 자기만의 '즐거운 꿈'(樂夢) 다이어트와 7분 스트레칭 설파로 일상을 메우고, 벌이를 채운다. 하면 할수록 더 즐거워지고 건강해진단다. 회사를 세우고, 강습소도 열었다. 살날이 많았기에 새 길로 나섰다고 했다. 이제 청바지와 가죽 점퍼, 금색으로 살짝 물들인 흰머리가 '교복'이다.

최근 1년간 일본 도쿄서 고령 사회 연구를 위해 살았다. 65세 이상 인구가 30% 가까이 이른 일본에서 지내면서 다채로운 생활과 새로운 삶을 사는 고령자가 참으로 많음을 느꼈다. 60대에 시인으로 등단하고, 70대에 화가로 작품전을 열고, 헌책방을 드나들다가 역사 전문가로 책을 쓴다. 고령자들이 나서서 다 같이 즐겁게 늙어가는 동네 만들기에 한창이다. 그런 노인 클럽이 20만곳이다. 일본은 현재 60세 남자가 평균적으로 24년을 더 산다. 여자는 29년을 더 산다. 인구 구조와 수명 증가 추세로 우리나라는 15년 정도 후에 그렇게 된다. 환갑이 지나도 대략 인생 3분의 1이 남아있는 셈이다. 경륜과 경험이 쌓여서 이어질 삶이다.

몸은 갈수록 젊어져 간다. 일본은 지금의 70대 체력 점수가 15년 전 60대와 같다. 70대 후반 체력은 매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오른다. 80세 절반 이상이 최소 20개 자기 치아를 갖고 있다. 일본과 한국의 직장인 복장은 비슷하나, 은퇴자 옷차림은 사뭇 다르다. 일본이 더 과감하고, 도발적이다. 사회적 눈치를 안 봐도 되니 개성이 더 두드러진 결과라고 본다. 경제 불황이라고 삶의 불황이 되어선 안 된다. 그러려면 근육과 치아를 잘 가꿔야 한다. 근육이 연금보다 강하고, 단단한 치아가 자식보다 든든하다. 평균 수명 90세로 치닫는 초고령 사회. 자기 개성 살려보라는 선물이고, 해보고 싶은 거 한번 해보는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관심과 느긋함, 근육과 치아가 남아 있는데 무얼 못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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