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기행

다른 나라도 짐승 내장 먹지만, 한국만큼 탐닉하진 않는다

류진창2 2025. 7. 20. 14:53

정동현 음식 칼럼니스트
입력 2025.07.19. 00:33 업데이트 2025.07.20. 13:43

[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곱창

서울 영등포구 ‘당산회관’ 한우곱창.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다른 나라도 내장을 먹는다. 이탈리아에서는 토마토소스에 소내장을 삶아 툭툭 잘라 낸다. 영국의 블러드 소시지는 순대처럼 돼지 내장에 수수와 보리 같은 곡물을 선지에 섞어 넣어 만든다. 멕시코의 타코에도 오소리감투 같은 이런저런 돼지 부속이 들어간다. 일본은 한국에서 건너간 교포들이 전파한 호르몬 구이가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이렇게 본격적으로, 먹을 것이 넘쳐나는 지금까지 짐승 내장에 탐닉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기름이 튀고 때로 질긴 그 부속들을 둘러앉아 정겹게 씹고 먹는 모습에는 인공지능을 논하는 시대를 깨부수는 원시성이 있다. 첨단을 달리는 K문화의 뒤편에는 이렇듯 불판과 연기가 잔뜩 깔렸다. 그 연기의 방향을 쫓아간 곳은 당산역 뒤편이었다.

고가 위에 있는 당산역을 내려오자 사방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아닌 게 아니라 역에서 골목길로 조금만 방향을 틀자마자 고깃집과 곱창집이 보였다. 도로 쪽으로 길게 자리 잡은 ‘당산회관’은 초저녁부터 이미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다. 가게 안에 들어가니 왜 사람들이 찾는지 감이 왔다. 직원은 밝게 인사했고 바닥은 끈적거림 없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인사와 청소. 이 두 가지만 잘해도 기본 이상은 한다는 것이 내 경험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곱창이 나왔다. 주방에서 초벌을 마친 곱창은 한쪽이 짙은 갈색으로 구워져 있었다. 보통 생으로 곱창을 올려놓고 굽기 시작하는 집이 많다. 손님이 곱창에 손을 대지 못하게 주의를 주기도 한다. 수분과 기름이 많은 내장 부위이기 때문에 이리저리 곱창을 움직이다 보면 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시간만큼 육즙이 빠져서 맛도 떨어진다. 기름이 사방으로 튀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그 공수의 절반을 뒷주방에서 끝냈기에 굽는 시간이 훨씬 짧았다. 테이블에서 할 일은 적당한 불 위에서 곱창의 기름을 살살 뽑아가면서 굽는 것뿐이다. 대신 빨리 익는 염통을 부지런히 입에 넣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직원은 가위로 곱창을 토막 냈다. 그 작은 구멍 사이로 알차게 든 곱이 보였다. 입에 넣었을 때 달고 쓰고 고소한 맛이 쭉 뽑혀 나왔다. 바삭하게 구운 덕에 곱창이 질기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씁쓸하고 고소한 맛이 반반씩 섞인 곱창은 양이 금방 줄어들었다.

다른 테이블도 모습은 비슷했다. 한쪽에 붙여놓은 텔레비전을 보며 탄성과 욕이 또 그만큼 섞여 새어 나왔다. 사람들의 조곤조곤한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렸다. 때로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도 났다. 둥그렇게 철판을 붙인 테이블 앞에 ‘짤뚱막한’ 의자에 앉아 가만히 그 소리를 들었다. 세계에서 제일 덥다는 서울의 여름 때문일까? 엇박자로 잔과 잔이 부딪치고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서서히 고양되는 그 열기가, 저 남국의 쿠바 한 귀퉁이에 앉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듣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애수도 비애도 없었다. 대신 흥겨우면서도 느슨하게, 심장 박동을 닮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리듬으로 사람들은 곱창을 입에 넣고 또 잔을 비웠다.

절반쯤 먹었을 때 부추를 불판 가운데 올렸다. 부추 양념이 섞이며 맛이 살짝 얼큰해졌다. 깻잎과 양파 장아찌를 곁들였다. 삭힌 간장의 맛이 입맛을 개운하게 만들었다. 정해진 코스처럼 볶음밥을 시켰다. 신김치와 김가루, 부추를 잘게 잘라서 공깃밥에 비빈 후 아직 곱창 기름이 남아 있는 불판에 볶았다. 동물성 지방의 무거운 감칠맛이 신김치를 만나 어우러진 볶음밥은 거절할 수 없는 은밀한 제안이었다. 조금 죄책감이 들었지만 기름이 반질반질한 밥알을 거부할 한반도인은 없을 듯싶었다.

곱창 맛의 비밀을 묻자 주인장은 웃으며 “거래처에 일찍 가서 물건을 기다린다”고 했다. 단골손님으로 만나 친구가 됐고 결국 5년 전부터 동업을 했다는 또 다른 주인장은 테이블 사이를 조용히 누비고 다녔다.

사람들은 둥근 스테인리스 테이블 위에 앉아 어깨와 술잔을 부딪치며 곱창을 집어 먹었다. 기다란 내장을 들척거리며 굽는 사람들은 서로 닮아 있었고 또 그만큼 가까워 보였다. 함께 속을 드러내고 내장을 먹는 사람들은 태초의 전우처럼, 마땅히 그렇게 되어버렸다. 내장을 자른다. 기름이 흐른다. 잔을 들어라. 우정을 논하라. 저 깊이 잠든 야성이 서울의 뒷골목에서 조금씩 깨어난다.

#당산회관: 한우곱창 200g 2만7000원, 모둠 2인분 5만9000원, 볶음밥 3000원


원글: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5/07/19/PRLIUTRBFFDEJH57ZBT7PIYQD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