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한국은 '바깥의 적'과 싸워야 한다는 '오겜2'

류진창2 2025. 1. 10. 06:52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입력 2025.01.10. 00:02 업데이트 2025.01.10. 06:12

일러스트=이철원


며칠 전 ‘오징어 게임 시즌2’가 개봉했다. 오징어 게임은 ‘정보의 비대칭 게임’이다. 겉으로는 목숨 걸고 하는 잔인한 게임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게임 참가자와 게임 운영자 사이 권력의 비대칭 이야기다. 이 권력의 비대칭은 정보의 비대칭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시즌1에서 게임 참가자들은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한다. 반대로 게임 운영자들은 모니터를 통해서 모든 것을 감시한다. 게임 참가자는 얼굴이 노출되지만, 게임 운영자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나온다. 이런 정보의 차이는 권력의 차이를 만든다. 시즌2 속 많은 이야기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투표’다.

게임 참가자들은 이 잔인한 게임을 계속할지 아니면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갈지를 게임 하나를 마칠 때마다 투표로 정하게 되어 있다. 겉으로는 참여자에게 선택권을 준 민주적 절차로 보인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겨져 있다. 우선 투표가 비밀투표가 아니라 공개투표였다. 그리고 그 사람이 투표한 결과를 가슴팍에 붙이게 하고, 숙소 바닥에 O와 X로 영역을 나누어 그 위에 서게 하였다. 무리는 둘로 나뉘었고 잠도 좌우로 나누어진 영역에서 잔다. 이제는 게임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경쟁하는 것 외에도 게임 참가자들이 좌우로 나뉘어서 싸우는 이중 갈등 구조가 되었다. 이 투표는 사람을 두 가지 종류로만 나눈다. 그리고 상대방은 나의 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공개적인 공간에서 나의 지지층과 모여서 대결 구도를 가지게 된다.

딱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이 그렇다. 민주주의 선거를 하지만 결국 1번이냐 2번이냐 두 개의 선택지에서 고른다. 결과는 박빙의 승부가 난다. 결과에 승복하고 맘에 들지 않으면 다음번 선거에서 또 투표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선거 후에 이슈를 만들어 공공의 공간에서 집회를 한다. 양측은 주말마다 길거리를 점유하고 세력을 과시한다. 오징어 게임 숙소에서 양측으로 나뉘어서 으르렁거리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더 무서운 것은 공개적으로 내가 누구를 지지하는지를 드러내고, 일반인에게 너는 누구를 지지하는지 밝히라고 겁박한다. 가수 임영웅에게 입장 표명을 하라는 것이 대표적 예다. 이때 자기편을 지지하면 깨어있고 의식 있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대역죄인 매국노 취급을 한다. 투표는 민주적 절차다. 집회의 자유도 민주주의의 한 형태다. 그런데 그 투표가 비밀이 아니고, 집회를 통해 공공연히 어느 편인지 밝히라고 강요하는 분위기는 반민주적 행태다. 민주적인 방법들이 모여서 반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다. 그런 상황이 우리나라에서 지겹게 반복되고 있다.

두 종류의 사람만 있다고 몰아가는 게임 운영자와는 반대로 드라마 속에서는 다양한 개인적 이야기를 보여준다. 우리는 각기 다르고 각자의 문제가 있다. 드라마에는 트랜스젠더, 미혼모, 코인으로 망한 자 등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드라마의 가장 명장면은 주인공 성기훈의 친구가 반대편인 O로 투표해서 미안한 마음에 멀리 혼자 앉아 있을 때, 배우 강하늘 캐릭터가 같이 밥을 먹자고 불러서 옛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는 장면이다. 투표는 개인 상황에 따라 나와는 반대로 할 수도 있고, 나중에 맘이 바뀔 수도 있다. 다른 투표를 해도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린 공통점이 더 많고 그 사람의 좋은 면을 믿기 때문이다. 그게 휴머니즘이다.

드라마에서는 해결의 희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5인 6족 게임을 할 때는 다른 팀도 응원한다. 다른 팀이 성공했을 때도 자기 일처럼 좋아한다. 5인 6족 게임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게임이고 각 개인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게임이다. 무엇보다 경쟁 상대가 상대방 팀이 아닌 게임이다. 반대의 게임도 나온다. 그룹핑 게임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친구를 버리는 잔인한 ‘편갈이’ 게임이다. 이 게임은 썸 타던 남녀 사이를 깨고, 부모·자식도 깨고, 심지어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기도 한다. 드라마 속에서 주요 인물은 2명이 한 방에 들어가야 살 수 있는 게임에서 방에 3명이 들어온 것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이 살려고 한 명을 죽인다. 이 사건에 반대되는 이야기는 주인공 성기훈이 운영자와 싸우기 위해서 게임 숙소 공간을 깨고 밖으로 나가는 사건이다. 시차를 두고 나오는 이 두 사건은 극명한 가치관의 차이를 보여준다. 누구는 공간의 한계를 깨어서 문제를 해결하고, 누구는 좁은 방에서 옆 사람을 죽여서 문제를 해결한다. 계급 갈등을 보여주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가 있다. 상위 계급을 타도하며 위 칸으로 계속 올라가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최종 방법은 기차 벽을 뚫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은 지금 오징어 게임 2 속 사람들처럼 두 색깔로 나뉘어 싸우고 있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공간적 한계를 짓는 벽을 뚫고 밖으로 나가서 진짜 적과 싸워야 한다.

좁은 한반도에서 편을 나누고 상대편이 죽어야 내가 산다는 생각을 버리고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한반도 역사에서 밖으로 진출했을 때는 내부 갈등이 줄어들고 잘 살게 되었다. 1970년대 우리 부모 세대와 선배는 중동에 건설 노동자로 진출했고, 1980년대에는 자동차와 반도체를 만들어서 해외시장을 개척했다. 지금은 좁은 국토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상대를 죽이려 하고, 공공의 공간에서 세력 과시를 하며 너는 누구 편인지를 밝히라고 강요한다. 이런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해결해야 할 진짜 적이 누군가에게는 환경 문제, 누군가에게는 빈부격차, 누군가에게는 전체주의 공산국가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좁은 공간에 갇혀서 사고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민주주의 방식이라도 디테일에서 조금 비틀어졌을 때 나치나 인민 재판 같은 반민주주의가 될 수도 있다. 투표는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식이지만 그렇다고 투표가 절대적 선(善)은 아니다. 오징어 게임 2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1/10/QYYOP4N4RFBZ5NUFYWUUYAWFNY/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