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53] 겨울 강가에서

류진창2 2025. 1. 13. 07:09

문태준 시인
입력 2025.01.12. 23:52

일러스트=이철원


겨울 강가에서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도현(1961-)

동백나무에, 꽃망울을 맺은 수선화에, 겨울 남새밭에 눈이 조금씩 흩뿌리는 것을 바라보다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설풍(雪風)이 부는 추운 한데에 섰을 때 이 시가 더 깊이 이해되었다. “어린 눈발”은 나어린 것만을 뜻하지는 않을 테다. 아직은 때가 묻지 않은 마음, 딱한 사정에 있는 이, 곧 사라지고 잊힐 것 등을 일컫는 것일 테다. 우리에겐 선심(善心)이 있으므로 “어린 눈발”을 지켜주고 싶어 애를 태우고, 염려하고, 걱정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해 강물처럼 뒤척인다. 그러므로 살얼음은 보호하려 하고, 가엾게 여기는 상련(相憐)의 마음에 다름 아니다. 다른 존재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하는 것, 그리하여 안타까워하고 연민하여 다른 존재를 나와 동일하게 여기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큰 사랑 아닐까. 시인은 시 ‘식물도감’에서 “오동나무가 던져주니 감나무가 받는다/ 감나무가 던져주니 가죽나무가 받는다/ 가죽나무가 던져주니 또 살구나무가 받는다// 까치 한마리를/ 받는다”라고 썼다. 이때의 응접도 곧 이해와 배려심이다.

안도현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1/12/DRNKWBN4EJFXHAB5G7CF6CWJ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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