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포트 녹스

류진창2 2025. 2. 26. 10:08

김홍수 논설위원
입력 2025.02.24. 20:36 업데이트 2025.02.25. 00:10

일러스트=이철원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틀 뒤 육군 헌병대가 한국은행 금고로 급파됐다. 1차로 금 1070㎏ (918억원), 은 2500㎏(35억원)을 경남 진해 해군본부로 실어 날랐다. 하루 뒤 서울이 함락된 탓에 나머지 금 260㎏(223억원), 은 1만6000㎏(227억원)은 북한군 수중에 들어갔다. 이런 경험 탓인지 한국은행은 보유 금 104t (8조9천억원)전량을 영국 영란은행 금고에 보관하고 있다.

▶세계 최대 금 보유국인 미국의 금 보관소는 켄터키주에 있는 포트 녹스(Fort Knox)이다. 남북전쟁 때 맹활약한 헨리 녹스 장군의 이름을 따서 만든 육군 기지이다. 두께 50㎝ 이상 강철로 만들어진 포트 녹스의 금고에는 미국 독립선언서, 링컨 대통령 게티즈버그 연설문 등 국가적 유물도 함께 보관돼 있다. 난공불락 이미지 때문에 영화 ‘007 시리즈- 골드 핑거’의 배경이 됐다. 영국 금 매매 업자가 금값을 올리려고 포트 녹스 금을 폭파시키려다 제임스 본드에 의해 좌절되는 스토리이다.

▶베일에 싸인 곳이라 “미 정부가 금 시세를 조작하다 금괴를 모두 탕진했다”는 음모론이 생겨났다. 트럼프 1기 정부 땐 재무장관이 의회 대표단과 함께 포트 녹스를 방문한 뒤, “금을 확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일론 머스크가 “포트 녹스의 금이 도난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누가 장담하느냐”며 음모론에 다시 불을 지폈다. 트럼프 대통령까지 “금이 거기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맞장구를 치고 있다. 부정선거 등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지만 새삼 포트 녹스를 부각하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1971년 달러와 금을 바꿔주는 ‘금 본위제’를 폐기한 미국은 금이 달러 패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금 가격을 억눌러 왔다. 금값이 급등하면 정부 소유 금을 대거 풀거나, 금 선물 거래 보증금을 대폭 올려 금 투자자를 혼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 코로나 팬데믹 대응에 달러를 너무 푸는 바람에 이 방법도 통하지 않게 됐다. 1970년대 가격으로 평가해 놓은 미국 금을 시가로 재평가하면 정부 보유 금 가치가 110억달러에서 7500억달러로 68배 불어난다고 한다. 국가 부채를 줄이거나 비트코인을 매입하는 등 다른 용도로 요긴하게 쓸 수도 있다. 트럼프가 바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추측이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채굴한 금은 20만t(1경7150조원), 올림픽 수영 경기장 2개를 겨우 채우는 분량이다. 20%는 국가가, 80%는 민간이 갖고 있다. 트럼프가 실제로 금 대신 비트코인으로 갈아타는 선택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글로벌 시장에 대파란이 일 수도 있다.

헨리 녹스 장군
007 골드 핑거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2/24/K6YIL7FCMFAHJLLKFITIBPKS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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