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질서 싹 바뀌는데… 해법 못 찾는 정부·기업
박순찬 기자 김경필 기자
입력 2025.02.25. 00:55 업데이트 2025.02.25. 10:15
트럼프 2기에 장관급 회담은 외교부가 유일
경제·안보 분야 일정도 못 잡아
기업이 나서도 민간 한계 뚜렷
‘트럼프 행정부 2기’를 맞아 한국 정부에서 지금까지 미국과 장관급 회담을 한 인사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유일하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이 한 달 가까이 지난 이달 15일(현지 시각) 독일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해 마코 루비오 미 국무 장관과 40분가량 회담을 한 것이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후 ‘한·미 장관급 인사’의 첫 대면이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한 통 하지 못한 것은 물론 ‘카운터파트’인 스콧 베선트 미 재무 장관도 만나지 못했다. 당초 26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G20 재무 장관·중앙은행장’ 회의에서 만남을 추진했지만, 베선트 장관이 회의에 가지 않기로 하면서 최 대행도 불참하기로 했다.
국방부 장관은 현재 장기간 공석(空席) 상태고, ‘통상 수장’인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방미를 추진 중이지만 아직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 장관과의 일정 조율이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대미(對美) 외교’가 총체적 공백 상태에 빠진 가운데 초조해진 기업인들이 직접 사절단을 꾸려 미국을 찾고 있지만 ‘민간의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지난 19~20일 산업계 인사 26명으로 구성된 대한상공회의소 경제 사절단이 미국을 찾았지만, 이들은 장관급과 만나는 일정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출발했다.
◇트럼프, 1기 땐 “생큐 삼성”… 2기는 분위기 확 달라져
익명을 요구한 한 사절단 일원은 “이번 방미에서 느낀 것은 동맹은 동맹이고, 경제는 철저히 경제라는 것”이라며 “다른 나라는 대통령, 총리가 직접 1조달러(약 1427조원)나 되는 투자 보따리를 싸 들고 오는 마당에 기업인들이 정부와 협의 없이 제대로 된 카드를 들고 오지 않으면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트럼프 2기에 일본, EU(유럽연합) 등 세계 각국이 발 빠르게 뛰는 가운데 한국은 경제 외교의 사령탑도, 제대로 된 전략도, 준비도 없이 낙오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1조달러(약 1427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대량의 LNG(액화천연가스) 구매를 약속했다. 콧대 높은 유럽 정상들도 잇따라 미국을 찾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4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27일 워싱턴을 방문해 각각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해외 정상 중 처음으로 트럼프 당선인과 통화하며 “4년간 6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고, 트럼프도 “사우디가 첫 해외 방문지가 될 수 있다”며 돈독한 관계를 쌓아 나가고 있다.
재계에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전의 1기 때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고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당시 취임 직후였던 2017년 2월 트위터(현 X)에 “생큐 삼성! 당신과 함께하고 싶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가전 공장을 짓는다는 보도가 나오자 발표도 전에 ‘고맙다’고 선수를 친 것이다. 당시 삼성은 3억8000만달러(약 5425억원)를 들여 사우스캐롤라이나에 공장을 지었다. 31억달러(약 4조4000억원)를 투자해 루이지애나에 석유화학 공장을 지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19년 5월 백악관 초청을 받아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2기 때는 기업들이 정부의 부재 속에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지난 21일 경제 사절단은 러트닉 상무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기업마다)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를 투자하면 허가와 규제 완화를 돕고, 100억달러(약 14조원) 이상을 투자하면 최상급 서비스를 해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대규모 미국 투자를 해왔던 기업들은 또다시 ‘10억달러’를 사실상의 투자 하한으로 보고 복잡한 셈법에 빠졌다. 수억 달러 투자에도 만족했던 1기 때와 비교해 금액이 크게 늘면서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 투자는 비싼 인건비와 구인난 등 여러 어려움이 많아 판단이 쉽지 않은데, 불과 몇 년 새 투자 기준까지 높아진 느낌”이라며 “웬만한 회사는 눈높이를 맞추기가 어려워 난감한 상황”이라고 했다.
원글: https://www.chosun.com/economy/industry-company/2025/02/25/DUK3H5IAYJAVDD7HWPUIACLEXU/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