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동심의 연못에 앉아 도넛 한 입… 5월, 허기진 마음을 채울 때

류진창2 2025. 5. 4. 22:01

[특집 : 지금 문학은] 어린 마음
황지윤 기자
입력 2025.05.03. 00:51 업데이트 2025.05.03. 07:19

유희경의 시 ‘도넛을 나누는 기분’에서 화자는 밤에 버스를 기다리며 친구와 도넛을 나눠 먹는다. ‘꺼낸 도넛을 반으로 가른다./ 집으로 돌아가려 함과/ 집으로 가고 싶지 아니함 처럼./ 정확히 나누었는지 묻지 않기’ 반으로 딱 나뉘지 않는 갈팡질팡한 어린 마음에 웃음이 난다. /일러스트=이철원


동심(童心)의 세계로 돌아가는 경험은 소중하다. 우리 모두 한때는 순수한 아이였다. 세상 풍파를 겪으며 깎여나간 것을 틈날 때마다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 문학은’ 특집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어린이, 청소년, 어른이 함께 읽기 좋은 시집과 산문 등을 추렸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쓰인 책이지만, 어른도 달래준다.

◇ ‘너도 원하는 게 많니 바람아...’

사계절


내 눈에 무지개가 떴다

함민복 동시집 | 송선옥 그림 | 84쪽 | 사계절 | 1만3000원

40년 가까이 시를 써 온 함민복 시인이 동심을 길어 올렸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동심이 파 놓은 연못’에선 ‘부드럽고 따듯한 설렘과 푸른 호기심이 늘 출렁거린다. ‘그 투명한 연못이 비춰준 무지갯빛 생각의 춤들을 여기 시로 옮겨보았습니다.’

강아지, 고양이, 참새, 두더지, 바람, 구름…. 작은 존재들이 어린이와 함께 재잘거린다. ‘너는 특기가 뭐니/ 구름아// 너도 원하는 게 많니/ 바람아(…)’(‘질문 속 답’). 송선옥 그림책 작가의 다정한 삽화도 책장을 넘기는 재미를 더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책.

동시집이지만, 어른들에게도 권할 만하다. 아이의 때 묻지 않은 시선은 어른의 세계를 간파한다. ‘더워/ 강아지가 혀를 길게 내밀고 있다// 네 혀가 주걱을 닮았구나/ 주걱. (…) 사람들 혀는 미끄럼틀을 닮았어요/ 미끄럼틀.// 맞지요?/ 말이 쏜살같이 미끄러져 나오잖아요// 안 돼!/기다려!’(‘주걱과 미끄럼틀’).

◇ 사춘기 시절의 기분들

/창비교육


도넛을 나누는 기분

김소형 외 지음 | 212쪽 | 창비교육 | 1만3000원

‘도넛을 나누는 기분’은 ‘창비 청소년 시선’ 시리즈 출범 10주년과 50번째 출간을 기념한 시집. 황인찬·박소란·양안다·박준·유희경 등 젊은 시인 20명이 저마다 10대 시절을 추억하며 쓴 창작시 60편을 모았다. 각 시인의 시작(詩作) 노트도 담겼다.

‘너는 왜 그렇게 이상하게 걸어?/ 친구가 물어봤을 때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걸은 건데/ 어쩌라는 건지// 그래서 나는 새가 되어서 날아가기로 했다’(황인찬 ‘새가 되는 꿈’). 사춘기 시절엔 친구의 한마디가 왜 그리 콕 박히곤 했을까. 혹은 실없는 이야기로 어떻게 몇 시간씩 떠들 수 있었을까. ‘저는 친구랑 진지한 대화 중이에요/ 떡볶이는 쌀떡인지 밀떡인지가 중요하다고요’(김소형 ‘쌀떡과 밀떡의 기분’).


표지와 판형이 다른 두 버전으로 출간했다. 청소년을 위한 버전과 어른을 위한 버전으로 나눈 것. 폭신한 도넛이 그려진 청소년 버전의 판형이 더 크다. 어른들의 건강을 고려한 것인지, 어른 버전엔 도넛 대신 사과가 그려져 있다. 발문과 해설 등을 제외한 본문은 같기에 취향껏 고르면 된다.

◇ 난처한 마음으로 가득할 땐

/낮은산


난처한 마음

서현숙 에세이 | 160쪽 | 낮은산 | 1만2000원

에세이가 범람한다. 그러나 대부분이 성인 독자를 겨냥한다. 이에 낮은달출판사에서 청소년 에세이 ‘해마’ 시리즈를 새롭게 기획했다. 서현숙의 에세이 ‘난처한 마음’은 그 시리즈의 첫 책이다. 20년 넘게 고등학생에게 국어를 가르친 저자가 고등학생을 독자로 삼아 담담하게 자신의 10~20대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고교 시절 야간 자율 학습(야자)을 빠지고 서점에서 책을 읽곤 했다. 당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야자 빠지는 대신 서점에서 무슨 책 읽었는지 써서 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춘기 소녀의 똘똘 뭉쳤던 반항심이 희한하게 누그러졌다.

별생각 없이 러시아어과에 지원한 저자를 고1 때 담임선생님이 부른 일화도 있다. ‘문예창작과나 국문학과에 가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떠니?’ 저자는 이렇게 쓴다. ‘고3도 아닌 고1 때 담임선생님의 뜬금없는 조언이 내 마음을 흔들었을까? 응, 흔들었어 (…) 정확한 건 아무것도 없던 때, 누가 “넌 ( )를 잘할 거야. 넌 ( )에 재능이 있어”라고 말해준다면, 그 사람이 누구든 그 말에 솔깃하게 될 거야.’ 청소년기는 물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잘 사라지지 않는 난처한 마음을 규칙적인 리듬으로 토닥인다. 2021년 조선일보 ‘일사일언’ 필자 시절에도 그의 글을 좋아했던 독자들이 꽤 있었다.

원글: https://www.chosun.com/culture-life/book/2025/05/03/55M4AV77TJE5PJHM3KFK2EKJWQ/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