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임명묵의 90년대생 시선] 지구촌 뉴스 공론장 된 X… 한국만 존재감이 없다

류진창2 2025. 5. 28. 07:06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입력 2025.05.22. 00:02

일러스트=이철원


5월 8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국제 뉴스는 전날 있었던 인도와 파키스탄의 공중전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핵보유국 간 분쟁에, 양측 합쳐 전투기를 125대나 동원했다는 소식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이미 오른 지정학적 긴장을 한층 높이는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휴대전화기에서 X(구 트위터) 앱을 눌렀다. 근래에 이런 국제 소식을 전해주는 가장 기민한 SNS가 X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파키스탄이 운용하는 중국제 J-10C 전투기가 인도의 프랑스제 라팔 전투기를 격추했다는 소식으로 내 피드가 이미 시끌시끌했다.

그러나 X에 들어간 것은 단순히 소식을 빨리 알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이 정도로 중요한 소식 보도는 인터넷 미디어나 기성 언론이나 그렇게 큰 시차가 없다.

내가 정말 보고 싶었던 것은 이 공중전을 둘러싼 전 세계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갑론을박이었다. 인도-파키스탄 공중전을 둘러싼 X의 게시 글들은 이 사건에 대한 국제적 여론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나도 종종 보았던 인도 민족주의자들의 계정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고, 반대로 중국인 계정은 자국 무기의 낮은 가격과 높은 성능을 자랑하며, 중국 SNS에 올라온 영상들을 열심히 올렸다. 이스라엘과 협력한다는 이유로 인도의 집권 나렌드라 모디 정권을 비판해 온 무슬림 계정은 일제히 파키스탄의 승리에 환호했고, 반대로 인도, 중국과 모두 우호적 관계를 맺은 러시아 계정들은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X가 이렇게 활발한 세계 공론장이 될 수 있었던 데는 급속히 발전한 AI 번역의 공이 가장 컸다. AI 덕택에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 아랍어, 러시아어로 된 트윗도 버튼 한 번만 누르면 한국어로 뜻을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다. 그 뒤에 다른 번역기를 활용해 자기 의견을 덧붙이면 끝이다.

게다가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고 2023년에 X로 바꾼 뒤에는 특정 표현에 대한 규제도 줄어들면서, 이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보수 성향 계정들이 서구와 비서구를 가리지 않고 쏟아져 들어왔다. 머스크가 조성한 X의 보수 인플루언서들은 2024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당선시킨 여론의 발판이 되어주었다.

물론 언어의 장벽이 사라지고 그야말로 지구촌 사람들끼리 떠들게 된 변화는 논쟁도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X의 논쟁은 실재하는 갈등을 반영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계정 사이에서는 수없이 험한 말이 오간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폴란드 계정과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리아 계정이 맞붙는다. 하지만 이러한 치열한 언쟁이야말로 X가 무한히 다양한 세계인들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진짜 공론장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X에서 국제 뉴스를 접할 때 의아한 것이 있다면 한국의 존재감이다. 세계적으로 인지도 있는 계정들과 교류하는 한국인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 소식이 주요한 논제로 올라올 때도, 한국인이 우리의 맥락을 충실히 풀어 쓴 글보다는 정보의 나열만 있는 영어권 외신 기사가 전부일 때가 많다. K팝이나 성별 갈등을 비롯한 문화 영역은 활발한 교류가 있지만, 정치와 사회 이야기나 지식인들의 논쟁, 언론의 탐사 보도는 쉽사리 소개되는 것 같지 않다.

이 미디어 홍수 시대에, 세계의 공론장에서 우리를 향한 주목도가 낮다는 사실은 여전히 아쉽다. 그러나 이는 많은 기회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수많은 과제에 대해 X에서 중국인, 시리아인, 이탈리아인과 실시간으로 논쟁해 보면 어떨까. 우리가 생각해 보지 못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도 있다. 어쩌면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한국만의 맥락을 설명하느라 고생할 수도 있고, 또 의견이 다른 한국인끼리 영어로 치고받으며 세계에 한국의 분쟁을 소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 시장의 한계를 느끼는 언론과 미디어도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지도 모르겠다. 버튼 하나로 전 세계와 대화할 수 있는 지금, 거칠고 시끄러워도 그 속에서 우리 목소리를 내보면 어떨까어쩌면 우리 국제적 위상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J-10C 전투기
라팔 전투기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5/22/3WPSUDF4VZDRPCXVIHJEREUV6A/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