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세계인의 다리, 잠수교

류진창2 2025. 6. 1. 06:16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5.05.28. 20:52 업데이트 2025.05.28. 23:46

일러스트=이철원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과 서초구 반포동을 잇는 길이 795m 잠수교는 1976년 지어질 때 군사용 목적도 있었다. 교각 위에 상판을 얹은 극도로 단순한 구조였고 난간조차 없었다.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교각도 낮게 설계해 홍수가 나면 물에 잠겼다. 잠수교는 그런 의미에서 개발도상국 한국의 처지를 보여주는 다리이기도 했다.

▶잠수교가 군사용 이미지를 벗어난 것은 1984년 박영민이 대중가요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를 발표하고 같은 이름의 영화가 만들어지면서부터였다. 혜은이의 ‘제3한강교’는 1979년,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는 1985년에 발표됐다. 2008년 왕복 4차로를 2개 차로로 줄이고, 대신 보행로와 자전거 길을 만들면서 잠수교는 본격적으로 변신을 시작했다. 지금은 달리기 동호회나 자전거 동호회인 러닝 크루, 라이딩 크루의 성지가 됐고 결혼 앨범 촬영 명소로도 사랑받는다.

▶문화적 쓰임새는 더 주목받았다. 영화 ‘괴물’과 OTT 드라마 ‘스위트홈2’ 등의 무대로 등장하며 외국에도 알려진 이후 한류 드라마 팬들이 구글 맵을 켜고 이 다리를 찾았다. 패션 명소로도 거듭났다. 10여 년 전 전 세계 400만 시청자를 거느린 리얼리티 쇼 ‘도전 수퍼모델’은 화보 촬영지로 잠수교와 인근 세빛섬을 택했다. 재작년엔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개최한 패션쇼 런웨이로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지난 주말 잠수교에서 열린 K팝 보이 그룹 세븐틴의 결성 10주년 기념 공연은 잠수교의 또 다른 용도를 보여줬다. 잠수교에서 열린 첫 K팝 공연에 국내외 팬 6만명이 몰려들었다. 세계 곳곳에 강변 공연장은 많지만 잠수교 같은 강상(江上) 공연장은 유례가 드물다. 1982년 잠수교 위에 복층으로 지어진 반포대교가 각종 무대 조명과 대형 스피커를 매달 수 있는 공연장 천장 구실을 해줬기 때문이다. 반포대교 난간을 따라 설치된 길이 1.2㎞ 교량 분수가 K팝 음악에 맞춰 형형색색의 물줄기까지 쏟아내며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공연 풍경을 만들었다.

▶잠수교 개통 당시 사진이 있다. 강북 쪽에서 바라본 다리 건너 강남은 허허벌판이었다. 얼마 전 아침 출근길에 잠수교 북단에 서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그때 그 사진과 같은 각도에서 다리 건너편 강남 풍경을 찍어 보았다. 지난 반세기의 기적이 화면 안에 있었다. 우리 현대사를 모르는 외국인이 두 사진을 봤다면 다른 나라를 찍은 사진이라 했을 것이다. 그사이 잠수교는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120만명이 찾아오는 세계인의 다리가 됐다.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같은 이름의 영화
제3한강교
비 내리는 영동교
괴물
스위트홈2
도전 수퍼모델
루이비통 패션쇼 런웨이
세븐틴 결성 10주년 기념 공연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5/28/ZZOWKXPWBVDJVITB5COOGHRE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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