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저궤도' 경제
곽수근 기자
입력 2025.06.04. 00:51
아마존 열대우림에 사는 마루보 부족이 뉴욕타임스를 상대로 2500억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기자가 이 부족과 며칠간 함께 지내며 격오지 마을에 들어온 인터넷이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기사를 썼는데, 청년들이 스마트폰에 빠지고 미성년자는 음란물을 시청한다는 기사 내용이 문제가 됐다. 아마존 부족은 “우리를 포르노에 중독된 것처럼 낙인찍었다”며 발끈했지만 기사의 진짜 주제는 저궤도 혁명에 관한 것이었다. 저궤도 위성을 이용한 인터넷이 고립된 부족을 외부 세계와 연결시켰다는 것이었다.
▶지구 상공 100㎞가 ‘카르만 라인’으로 불리는 대기권과 우주의 경계선이다. 우주 공간 초입에 위치한 저궤도는 160~2000㎞ 상공을 뜻한다. 고도가 160㎞보다 낮으면 대기 저항이 커서 위성이 속도를 잃으며 낙하한다. 2000~3만5786㎞의 중궤도는 군사·통신 위성 등이 위치한 구간으로, 이미 GPS 등의 상용화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이 우주 공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수십 년간 노른자로 꼽혔던 중궤도를 밀어내고 저궤도가 가장 가치 있는 우주 공간으로 떠올랐다. 머스크의 우주 기업 ‘스페이스X’가 저궤도를 수천 개의 군집 위성으로 도배해 인터넷 통신 서비스 ‘스타링크’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저궤도 위성은 중궤도보다 통신 지연이 적고 실시간으로 데이터 송수신이 이뤄진다는 강점이 있다. 현재까지 위성 8800여 기가 발사됐고, 4만2000여 기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신기술은 새로운 비즈니스 공간을 창출한다. 저궤도 위성을 통한 통신은 지연 시간이 광케이블 통신보다 약 40% 적다. 광케이블 연결이 어려운 오지나 해상 지역도 커버할 수 있어 6G 통신, 자율 주행, 도심 항공 교통(UAM)의 필수 인프라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제 막 시작된 우주 관광의 주 무대도 저궤도로 확장될 전망이다. 저궤도를 거쳐가는 발사체로 서울~뉴욕을 30분 만에 주파하는 여객 운송과, 군수품을 수송하는 방안 등도 추진되고 있다.
▶스페이스X의 한국 자회사가 국내 기업들과 맺은 협정이 한국 정부 승인을 받으면서 우리도 저궤도 경제권에 진입했다. 빠르면 한 달 뒤 국내에서도 저궤도 통신 서비스가 시작된다. 해상 선박과 항공기용 위성 통신 서비스로 출발해 개인이 전용 위성 단말기로 서로 통신하는 서비스로 발전할 전망이다. 증기 터빈이 산업혁명을 촉발했고, 인터넷이 사이버 공간을 정보 혁명의 무대로 만들었다. 저궤도 군집 위성 기술이 저궤도 경제라는 비즈니스의 신대륙을 열고 있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6/04/Y4SCGXZK6VC4XDUKJ2N62NRNJM/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