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사라져가는 여고

류진창2 2025. 6. 11. 22:23

김민철 기자
입력 2025.06.11. 20:50

일러스트=이철원


서울 강남의 한 남녀공학 고교는 몇 년 전 2학년에 올라가면서 60명에게 독서실 자리 이용권을 주었다. 1학년 내신 성적순으로 했는데 60명 중 남학생은 6명밖에 없었다. 남녀공학 고교에서 남학생이 내신 성적 바닥을 깔아준다는 말이 현실임을 보여주는 수치다.

▶학교 성적 등에서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밀릴 것이란 우려 때문에 남학생 학부모들이 남녀공학 고교를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서울 강남의 D초등학교는 남자 고교가 가까이 있다. 이 학교 남학생은 인근 중학교에 이어 이 남고로 진학할 가능성이 높다. 이 초등학교 1학년 남녀 비율은 같은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남학생이 많아져 6학년 비율은 남자가 2배 이상 많다. 남자 고교에 배정받을 확률이 높은 곳을 찾아 남학생들이 차례로 전학 오면서 생긴 기현상이다. 이런 일이 초등학교부터 생기고 있다.

▶남학생 성적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여학생은 거의 안 하고 남학생들만 하는 ‘게임’이다. ‘월드컵 열리는 해에 남학생 수능 성적이 떨어진다’는 입시 괴담이 있을 정도로 스포츠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런데 남녀공학으로 가면 여기에 이성 교제 문제가 겹친다고 한다. 여학생들은 이성 교제를 해도 자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헤어져도 빨리 제자리로 돌아가는 편이지만 남학생들은 ‘멘털이 탈탈 털린다’(남학생 엄마들 표현)고 한다.

▶학생 수 감소로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남고·여고가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특히 여고가 없어지는 속도가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남학생들은 남고를 선호하는 반면 여학생들은 일부 명문 여고를 제외하곤 여고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 서울에서 남녀공학으로 전환한 고교가 5곳인데 모두 여고였다. 전국적으로도 여고는 2000년 496개에서 지난해 411개로 85곳 사라진 반면 같은 기간 남고는 443개에서 392개로 51개 줄어드는데 그쳤다.

▶교육부 자료를 보면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수학을 포함한 모든 과목, 모든 학년에서 남학생의 기초 학력 미달 비율이 여학생보다 높았다.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성적에서 뒤지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인 것 같다. 노르웨이 남성평등위는 2024년 보고서에서 남자아이들에게 초등학교에 1년 늦게 입학할 기회를 주자고 제안했다. 그래야 남녀 아이들이 비슷해진다고 보는 모양이다. 우리 사회에선 고교 내신부터 일자리까지 남녀 경쟁이 지나치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이 문제가 젊은 층 남녀의 정치 성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6/11/U2VAGUYRJRHELMEARJ5YXUI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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