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커피하우스] 텅 빈 미래… 당신은 어떤 대한민국을 꿈꾸십니까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입력 2025.06.19. 23:55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고,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부족한 곳을 메우며 과정에 충실해야 바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군자(君子)의 도리를 빗댄 표현이지만, 현대인들은 이 말을 더 폭넓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자기가 행복해야 남을 생각할 수 있다’고 읽기도 하고, ‘빚부터 갚아야 돈이 모인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부터 채우는 것이 자명한 물리적 이치이고, 누구에게나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웅덩이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니, 모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탁월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또 하나 상상을 보태본다면, 지난 대통령 선거는 두 웅덩이 가운데 어느 웅덩이가 더 탁하고 깊은지 견주는 선거 같았다.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웅덩이와, 힘자랑을 일삼던 다수당 후보의 각종 사법 리스크라는 웅덩이 사이에서 어떤 쪽이 더 악질인지 결정하는 선거 같았기 때문이다. 국민은 결국 오점 많고 힘자랑하던 후보를 선택했다. 우려와 불안에도 불구하고, 비상계엄과 탄핵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라는 판단을 한 듯하다. 핵폭탄급 구덩이를 파놓아 상대방 웅덩이를 약과로 보이게 한 장본인은 윤 전 대통령이다. 그리고 그를 배출한 당은 그 구덩이를 메우거나 돌아갈 실력이 없었다.
본디 선거란 미래를 놓고 벌이는 경쟁이다. 그것이 건실한 비전이든, 달콤한 거짓말이든, 사람들은 지도자가 제시하는 미래를 보고 표를 던진다. 그런 비전을 놓고 선거를 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용인하기 어려운 과거와 끔찍한 과거 중, 무엇이 덜 혐오스러운가 결정해야 했던 지난 대선은 미래가 아닌 과거를 선택하는 선거였다. 정확히 말하면 두 과거 사이에서 선택하고 응징하는 선거였다. 선거도 끝나고 응징도 했으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문제를 일으킨 전 대통령도, 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도 모두 사라진 지금, 미래만 덩그러니 진공 상태로 남았기 때문이다.
물론 선거 때 다들 슬로건 경쟁을 하기는 했다. 누구는 ‘다시 대한민국’을 외치고, 누구는 ‘진짜 대한민국’을 열겠다고 했다. 누구는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이라고 하고, 당선된 후보는 ‘다시 만난 민주주의, 다시 만날 대한민국’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너도나도 대한민국과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어떤 민주주의와 어떤 대한민국을 펼쳐 보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진짜를 열겠다면, 지금까지는 가짜였다는 말인가. 무엇이 가짜이고 무엇이 진짜인가. 이념도, 철학도 없이 승리를 위한 말잔치만 무성한 선거전에서 의미를 모르고 휘날리는 슬로건 사이로 유권자들이 본 건 ‘텅 빈 미래’였다.
정책 공약이 없었던 건 아니다. 미덥잖고 위험한 정책들이 있었으나 당면한 웅덩이가 시선을 가려 이슈로 크지 못했다. 갑자기 치른 선거니 마음의 준비도 턱없이 부족했다. 대중에게는 권력의 집중을 막아 생존을 도모하려는 본능이 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번에는 그조차 작동하지 않았다. 이렇게 정책과 미래가 사라진 선거는 한 지도자를 또 생산했고, 그의 선의에 나라의 미래를 통째 맡긴 꼴이 되었다. 그걸 견제할 세력이 지금 우리나라엔 존재하지 않는다. 비어 있는 미래의 틈새로 불안한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도 미래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한 조국을 꿈속에서도 그리워했고, 해방 후에는 ‘높은 문화의 힘’을 지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백범 김구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1947)가 되기를 꿈꿨다. 개발 시대인 1960년대에는 해양으로 뻗어가며 수출입국으로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통해 가난을 딛고 일어섰으며, 그 결과 문화 자본과 매력 자본이 넘치는 세계 10위권 강국으로 성장했다. 지도자와 국민이 함께 발전한 좋은 나라를 꿈꾸며 달려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고스란히 목격한 원로 어른들의 증언을 모아 최근 펴낸 ‘다시 대한민국을 상상하다’(21세기 북스)에는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세상과 바라본 미래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삶의 곤고함과 부조리 속에서도 바람직한 미래(desirable future)를 놓고 활발하게 토론했고, 한국인의 문화적 독자성과 우수성이 오늘의 발전을 견인했으며, 탁월한 행정가와 지도자의 혜안으로 정보 강국을 이루었다. 무엇보다 한국인의 DNA에 있는 이동성 개방성 대담성, 그리고 절체절명의 경험이라는 자양분은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 것이다. 어른들의 진단처럼 대한민국이 그랬으면 좋겠다.
비상계엄이 맥을 못 추고 불발에 그친 것은 사람들이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이다. 제법 커지고 세련된 대한민국과 비상계엄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마찬가지로 애써 일군 자유로운 땅에서 일인 독재나 일당 독재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러니 아마도 그런 독재자는 나오기 힘들 것이다. 사법부는 정의를 회복할 것이고, 괜찮은 젊은 정치인들이 나올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고 싶다.
창졸간에 치른 선거와 그걸 초래한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잔뜩 탁해진 시계 제로 사회에서, 그래도 바람직하고 정상적이며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계속 상상하자고 말하고 싶다. 혹여 아는가. 그런 생각의 힘으로 ‘진짜 좋은 대한민국’이 펼쳐질지. 그러나 상상을 멈춘다면 생각지도 않았던 이상한 세상이 열릴지 모른다. 이 혼돈과 진공의 시대, 당신은 어떤 대한민국을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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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6/19/OEXH3V7NHFHCNJ3BPTF57EYVA4/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