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임명묵의 90년대생 시선] 전쟁이 불러온 단결… 이란 청년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류진창2 2025. 6. 26. 23:08

임명묵 'K를 생각한다' 저자
입력 2025.06.26. 00:13 업데이트 2025.06.26. 10:38

"이스라엘에 본때를"… 정권에 반감 있던 청년층도 애국주의에 동참
'이란주의' 카드 꺼낸 정권… 전쟁이 체제 유연성 키울 계기 될 수도

일러스트=이철원


지난 13일 이스라엘이 이란을 향해 ‘일어서는 사자’ 작전을 전격적으로 개시하며 세계의 눈이 다시 중동에 쏠렸다. 이스라엘 측의 혁명수비대 고위 인사 제거와 기습적 공습에 이란은 ‘제3차 진실의 약속’ 작전을 발동하여 이스라엘을 향한 미사일 공격에 나섰다. 이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이란 핵 시설을 향한 벙커버스터 공격에, 지난 24일 오전 발표된 휴전까지. 열흘 남짓의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중동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바쁘게 관련 보도와 분석을 읽느라 하루 시간 대부분을 할애했다. 작년에 이란에 한 달 동안 여행을 다녀올 무렵 사귀었던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고, 이번 사건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묻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등장한 이란 이슬람 공화국 체제가 청년층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혁명과 전쟁의 기억이 없는 이란 청년들은 다른 나라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과 인스타그램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이란 바깥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정부가 강조하는 이슬람 도덕에는 반감을 느낀다. 그런데 미국과의 대치로 경제난은 장기화되고, 서방 세계로의 접근이 차단되고, 억압적인 도덕 통제는 그칠 줄 모르니 체제 자체에 대한 반감이 해를 넘길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여성의 히잡 착용 의무를 거부하며 일어난 2022년의 마흐사 아미니 시위는 그 절정이었다. 나는 작년에 이란을 여행하면서 이 시위에 참여하며 정부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버렸다는 많은 청년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이슬람 공화국을 지지하는 보수적인 청년들 역시 자기들 세대가 국가에 충성하지 않는다며 나에게 근심을 표했다.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당초에 미국과의 핵 협상에 다시 나섰던 것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불안감이 체제 상층부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공격이 시작되니 여론의 변화가 느껴졌다. 비록 인터넷과 채팅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지만, 평소에 이슬람 공화국이 너무나도 싫다고 염증을 내던 친구들이 “이스라엘에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게시글을 SNS에 공유하고 있었다. 항전을 촉구하는 애국주의 집회에는 검은 차도르를 뒤집어쓴 중년 여성들과, 일본 애니메이션 티셔츠를 입은 젊은 여성들이 한데 모여 구호를 외쳤다. 이스라엘의 공격은 정통성 위기에 빠져 있던 이슬람 공화국에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새로운 회복력을 불어넣어 준 것 같다. 사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이란 혁명 직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침공해 오자, 혁명 지도자 호메이니는 자신이 수감시킨 팔레비 시절의 군인들을 ‘조국을 지키라’며 대거 석방해주었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의지하는 두 정신적 원천이 이러한 신속한 봉합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하나는 국체의 근간인 시아파 이슬람인데, 정의를 위한 순교와 투쟁을 강조한다. 그러나 종교적이지 않은 이들, 특히 청년층은 이제 이슬람 구호를 잘 알지도 못하고, ‘아랍인의 종교’라며 시큰둥하게 볼 때가 많다. 이때 다른 원천인 ‘이란주의’가 등장한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페르시아 문명과 제국에 대한 자부심이다. 이슬람 공화국은 이슬람의 논리만으로는 대중의 지지를 얻어낼 수 없을 때 이 ‘이란주의’ 카드를 꺼내 들어 국민의 단결을 촉구했다.

어쩌면 이슬람 공화국은 당분간 이어질 군사적 대치와 경제난을 헤쳐나가기 위해 이란주의를 더 강조할 수도 있다. 청년층이 반감을 느끼는 종교적 문화 통제 정책을 완화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만약 청년층의 민족주의 정서에 정권이 화답하며 세속주의를 일정 부분 포용한다면 어떨까. 아직은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자유 세계가 원해온 이란의 세속화가 역설적으로 현재 이란 체제의 내구성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정권이 자신들을 전쟁으로 몰아넣었다고 불만을 품는 청년층도 많을 것이다. 어쨌든 선제공격을 당한 상황에서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휴전이 정착된 뒤에 본격화될 이란 청년층과 이슬람 공화국 체제의 갈등과 협상에 중동의 운명이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6/26/CXR4NJBJ6VCU7GWUMLSBG66ATI/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