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거북선과 '방위 산업의 날'

류진창2 2025. 7. 9. 07:52

양승식 논설위원
입력 2025.07.08. 20:19 업데이트 2025.07.08. 23:53

일러스트=이철원


1971년 11월, 설립 1년을 갓 넘긴 국방과학연구소(ADD: Agency for Defense Development)에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왔다. 한 달 안에 소총, 기관총, 박격포 등을 만들어 오라는 내용이었다. ‘번개처럼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번개 사업’이라 명명됐다. ADD 연구원들은 서울 청계천 철물 공구점 등을 드나들며 장비를 구했고 미국 무기를 역설계하는 방식으로 시제품을 완성했다. 그해 12월 16일 청와대에서 시제품 전시회가 열렸고, 24일엔 실사격을 했다. 사격은 개발 책임자였던 구상회 박사가 직접 해야 했다. 무기가 창틀용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탓에 차출된 병사가 겁을 먹고 사격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상 없이 무기가 작동하자 연구원들은 모두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1968년 1월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 사건북한의 미 해군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이 터졌다. 미국은 1969년 7월 ‘자국 방위의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는 내용의 닉슨 독트린을 선언했다. 1970년 8월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ADD가 창설됐다. 당시 수립된 병기 개발 기본 방침엔 “1단계로 미제 최신형을 모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베끼기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소총 모방으로 시작했던 방위산업은 50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80~1990년대엔 전차, 장갑차, 자주포, 구축함 생산 능력을 갖췄다. 이제 재래식 탄도미사일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사실상 ICBM 능력까지 확보했다. 고난도 지대공 미사일 천궁, 경전투기 FA-50까지 수출한다. 작년엔 무기 수출국 세계 10위에 이름을 올렸고 유럽에도 수출했다. 기적이란 말밖엔 할 수가 없다.

정부가 7월 8일 제1회 방위산업의 날 기념식을 개최했다. 7월 8일은 충무공 난중일기에 기록된 거북선의 첫 출전일이다. 5명에게 정부 포상도 수여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방위산업은 안보일 뿐만 아니라 먹거리”라고 했다. K방산은 이제 세계 4강 진입이 목표다.

기적엔 공짜가 없다. ADD와 방산업체의 연구원들이 과로나 폭발 사고로 순직했다. 2023년에도 ‘현무’ 등 주요 탄도미사일 개발에 참여해온 60대 ADD 연구원이 폭발 사고로 숨졌다. 정년 퇴임을 했던 그는 “힘이 남아있는 한 국방력 증진을 돕겠다”며 재채용돼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해 경북 포항 앞바다에선 개발 중인 해병대 차기 상륙돌격장갑차(KAAV-Ⅱ)가 침수돼 방산업체 직원 2명이 사망했다. 개발과 시험 중 사고가 나거나 실패하면 비난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지금의 K방산은 이런 이름 없는 영웅들이 만들었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7/08/6MABJLVEZBDGVK52ACFC42VU6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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