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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비경999

(한국의비경064)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경복궁 흥례문 야경

아래 사진은 토픽이미지 계약 작가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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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례문,경복궁,종로구,서울(2003)
artist:  H.K. Jung
ⓒ515985/Topicimages(토픽이미지)
http://www.topic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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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慶福宮)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궐(正闕).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조선을 세운 이성계(李成桂)와 그 지지자들은
고려의 서울인 개경(開京)으로부터 도읍을 한양성(漢陽城)으로 옮겨 신도(新都) 경영에 착수하는 동시에 궁궐의 조성도 착수하였다.
1394년(태조 3) 9월 신궐조성도감(新闕造成都監)을 두고
청성백(靑城伯) 심덕부(沈德符), 좌복야 김주(金湊), 전정당문학 이염(李恬), 중추원학사 이직(李稷) 등을 판사에 임명하여 실무를 담당,
해산(亥山:北岳山)을 주산(主山)으로 삼고 임좌병향(壬坐丙向:北北西에 앉아 南南東을 바라다봄)의 터를 잡았다.
원래 태조는 고려시대 남경(南京)의 이궁(離宮:宮井洞 일대) 터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새로운 왕조의 뻗어나는 기세를 수용하기에는 너무 좁은 터전이라 하여 그 남쪽에 따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10월에 한양으로 도읍을 일단 옮긴 태조는 수도 건설에 박차를 가하여,
12월 3일에 궁궐과 종묘를 짓겠다고 산천신(山川神)에게 고사하고,
이튿날 개기(開基)하여 주야로 작업을 진행, 1395년 9월에 낙성을 보게 되었다.
명칭은 《시경》의 ‘군자만년 개이경복(君子萬年 介爾景福)’이란 글귀에서 따서 경복궁이라 하였다.
궁내에 준성된 전각은 총 390여 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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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흥례문(慶福宮興禮門)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의 경복궁에 있는 3개의 문 가운데 중문(中門).
창건된 것은 1395년(조선 태조 4)으로, 원래 이름은 '예(禮)를 널리 편다'는 뜻의 홍례문(弘禮門)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燒失)되었다가 1867년(고종 4)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이 중건하면서
청(淸) 건륭제(乾隆帝)의 이름인 홍력(弘歷)에서 홍(弘)자를 피하기 위해 흥례문으로 고쳤다고 한다.
그러다 1910년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면서 주변이 훼손되기 시작하였고,
1916년 일제가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흥례문을 비롯한 주변 행각(行閣)이 모두 파괴되었다.
1990년 정부가 경복궁 복원사업을 시작하면서 역사바로잡기 차원의 일환으로 1996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뒤,
2009년까지 마무리되는 경복궁 복원사업의 5개 권역 가운데 침전(寢殿)·동궁(東宮)에 이어 3번째로 2001년 10월 26일 완공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우면서 철거된 지 85년 만이다.
광화문(光化門)과 근정문(勤政門) 사이에 있는 경복궁의 중문(中門)으로, 2층 목조건물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주변 행각과 유화문(維和門)·기별청(奇別廳)·영제교(永濟橋)·어도(御道:임금이 드나들던 길)·
금천(禁川:궁궐 안의 개천으로 御溝로 부른다) 등과 함께 복원되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을 때 원래의 지반보다 1.5m 높게 지었기 때문에
복원 때는 경복궁의 본래 모습대로 1.5m의 땅을 파내고 근정문과 같은 높이로 하였다.

(출처:네이버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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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홈: http://www.royalpalac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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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흥례문 위치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