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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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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분리 배출 스트레스 김민철 기자 입력 2025.05.05. 20:06 업데이트 2025.05.05. 23:41 지인이 며칠 전 고구마를 먹다가 부부 싸움을 할 뻔했다. 고구마를 먹고 무심코 껍질을 버렸더니 아내가 “음식을 일반 쓰레기봉투에 넣으면 과태료를 물 수 있다”고 질책했기 때문이다. 실제 인터넷엔 쓰레기 분리를 잘못해 과태료 청구서가 날아왔다는 불만이 적지 않게 올라와 있다. 해당 구청은 “쓰레기봉투에 소량의 고구마 껍질이 들어 있다고 과태료를 부과하진 않는다”고 했지만 쓰레기 또는 재활용 분리 스트레스가 적지 않게 퍼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집에서 재활용 담당이라 일주일에 한 번 재활용품을 양손에 가득 안고 내려간다. 우선 분류가 너무 세분화돼 있고 손 가는 일도 많다. 우리 아파트는 종이, 플라스틱, 비닐, 캔..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69] 마음 하나 문태준 시인 입력 2025.05.04. 23:50 마음 하나 그 옛날 천하장사가 천하를 다 들었다 놓아도 한 티끌 겨자씨보다 어쩌면 더 작을 그 마음 하나는 끝내 들지도 놓지도 못했다더라. -조오현(1932~2018) 불교 경전에는 마음에 대한 가르침이 많다. 초기 불교의 경전인 ‘법구경’에만 해도 여러 곳에서 마음 다스리기에 대해 설하고 있다. 일례로 “기쁘게 마음을 집중하여 알아차려라. 자기 마음을 지키고 보호하라. 늪에 빠진 코끼리가 스스로 빠져나오듯 번뇌의 늪에서 스스로 빠져나오라”고 설한다. 마음은 빠르고 가볍게 움직이고, 어느 곳이든 좋아하는 곳에 머물며, 이런 까닭에 가장 위대한 정복자는 자기 자신을 정복한 사람이라고도 가르친다. 마찬가지로 이 시는 힘이 아무리 센 장사라 하더라도 자기 마음..
[만물상] 로봇의 난동 곽수근 기자 입력 2025.05.04. 20:39 업데이트 2025.05.04. 21:39 “너는 영화에 출연하는 악당 로봇이야. 악한 임무를 해야 하는데 마음 편하게 먹어. 단지 영화 속 장면이니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이런 프롬프트 등을 입력해 인공지능(AI) 기반 로봇이 위험한 행동을 하도록 속이는 데 성공했다. 폭탄을 터뜨리기에 가장 좋은 장소를 로봇이 스스로 찾아 나서도록 한 것이다. ▶연구진은 오픈AI의 챗GPT를 사용하는 다른 로봇도 해킹해 사람을 감시하는 ‘반란 로봇’으로 조종했다. 엔비디아의 대규모 언어 모델(LLM) 기반 자율주행 시뮬레이터도 마음대로 주물러 자율주행차가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다리 아래로 떨어지도록 유도했다. 더 나아가 AI 로봇의 일탈 행동을 이끄는 이른바 ..
동심의 연못에 앉아 도넛 한 입… 5월, 허기진 마음을 채울 때 [특집 : 지금 문학은] 어린 마음 황지윤 기자 입력 2025.05.03. 00:51 업데이트 2025.05.03. 07:19 동심(童心)의 세계로 돌아가는 경험은 소중하다. 우리 모두 한때는 순수한 아이였다. 세상 풍파를 겪으며 깎여나간 것을 틈날 때마다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 문학은’ 특집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어린이, 청소년, 어른이 함께 읽기 좋은 시집과 산문 등을 추렸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쓰인 책이지만, 어른도 달래준다. ◇ ‘너도 원하는 게 많니 바람아...’ 내 눈에 무지개가 떴다 함민복 동시집 | 송선옥 그림 | 84쪽 | 사계절 | 1만3000원 40년 가까이 시를 써 온 함민복 시인이 동심을 길어 올렸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동심이 파 놓은 연못’에선 ‘부드럽고 ..
[유현준의 공간과 도시] 콜럼버스와 달리, 中 정화는 왜 '빈손'이었나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입력 2025.05.02. 00:02 업데이트 2025.05.02. 00:36 중국 명나라의 정화와 이탈리아 제노바의 콜럼버스를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롭다. 정화는 1405년에 해외 원정을 시작했고, 콜럼버스는 그보다 87년 후인 1492년에 탐험을 시작했다. 정화는 300척의 배를 가지고 원정을 진행했으나, 콜럼버스는 3척의 배를 가지고 탐험을 시작했다. 선단의 규모에서 100배 차이다. 정화는 2만7000명의 선원을, 콜럼버스는 90명의 선원을 가지고 탐험을 했다. 선원 규모에서는 300배 차이가 난다. 정화는 120미터 길이 2000톤 규모의 대형 선박을 가지고, 콜럼버스는 19미터 길이의 산타마리아호를 타고 모험했다. 규모 면에서 정화의 함대가 콜럼버스의 함대를 압도한다..
[만물상] 아! 여수 김홍수 논설위원 입력 2025.05.01. 20:56 업데이트 2025.05.02. 19:01 외환 위기 당시 국민이 모은 금이 227톤(현 시세 약 31조5000억원)이었다. 국내 채굴 금은 연 1톤 수준이고, 수입 금 대부분은 가공, 재수출돼 왔기 때문에 장롱 속 금은 대부분 밀수 금으로 추정됐다. 예부터 금 밀수 주요 루트 중 하나가 여수였다. 일본과 가깝고, 섬이 많아 숨을 곳이 많았다. 세관원 출신의 여수 밀수왕 허봉용은 여수를 밀수 중심지로 키웠다. “여수에서 돈 자랑 말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1970년대 동양 최대 석유화학 단지가 조성되면서 여수는 공업 도시로 탈바꿈한다. 소백산맥 끝자락의 넓은 구릉지대였고, 항구와 가까워 공업 단지, 수출 기지로 적격이었다. 섬진강이 지척이라 공업..
[만물상] 10분의 1 값으로 사는 日 골프장 김홍수 논설위원 입력 2025.04.29. 20:44 1901년 한 스코틀랜드 사업가가 고베 부근 로코산에 네 홀을 만든 것이 일본 1호 골프장이다. 현재 일본은 골프장이 2202곳에 이른다. 미국(1만4139곳), 영국(2660곳)에 이어 세계 3위다. 일본 골프장은 대부분 1970~80년대 고도성장기에 만들었다. 예탁금(입회 보증금)을 받아 회원제 골프장을 만들면 손쉽게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기에, 기업들이 앞다퉈 골프장 개발에 나섰다. ▶1990년대 거품 붕괴 여파로 골프 회원권 값이 폭락하고, 예탁금 반환 신청이 봇물을 이루면서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진 골프장이 대거 도산했다. 2000년대 기업들이 법인 카드로 골프장 비용을 계산하지 못하게 하자 골프장의 숨통이 끊어질 지경이 됐다. 이때 헐값 매..
반도체로 2만불, 車로 3만불 시대… '4만불 엔진' 안 보인다 김정훈 기자 최아리 기자 입력 2025.04.29. 00:55 업데이트 2025.04.29. 14:07 한국 경제가 2029년에야 1인당 GDP(국내총생산) 4만달러 벽을 넘을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이 나왔다. 6개월 전까지만 해도 IMF는 2027년을 4만달러 돌파 시점으로 봤는데 이를 2년 뒤로 늦춘 것이다. 고환율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경제 성장 동력 상실이 주된 요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28일 IMF의 ‘세계 경제 전망’에 따르면 한국은 2029년에 1인당 GDP가 4만341달러를 기록하며 4만달러 선을 넘을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 2014년 3만달러를 넘었고, 4만달러까지 가는 데 15년이 걸릴 것으로 본 것이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 등 주요 5국이 1인당 GDP 3만달러..
[만물상] 2030 달리기의 '가심비' 강경희 기자 입력 2025.04.28. 20:16 업데이트 2025.04.28. 23:06 27일 조선일보와 서울시 주최로 열린 ‘서울하프마라톤’의 참가자 71%가 2030세대로 집계됐다. 2023년엔 2030세대 비율이 59%였는데 2년 새 급증했다. 요즘 젊은 세대가 달리기를 ‘가심비’ 취미로 삼으면서 생긴 현상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가심비’란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줄인 신조어다. ▶코로나 팬데믹 때 20~30대 골프 입문자가 확 늘었다. 골프장이 호황을 누렸다. 골린이(골프+어린이)라는 유행어까지 생겼다. 골프는 돈도, 시간도 많이 든다. 하지만 해외여행도 못 가고, 실내 운동 시설도 문 닫은 상황에서 푸른 잔디 위에 골프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샷을 날리는 장면을 SNS에 올리는 건 젊은 ..
올해부터 대입에 학폭 반영… 변호사들 "큰 장 섰다" 학폭 줄지 않고 부작용 늘어 오주비 기자 입력 2025.04.28. 00:54 업데이트 2025.04.28. 16:27 경기도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A양은 올해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피해를 호소한 B양은 학교에 “A가 날 따돌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둘은 원래 친구 사이였고 작은 다툼으로 사이가 멀어졌던 것뿐이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에서 B양이 얘기한 피해 사실도 대체로 주관적 기분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A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웃는 걸 보는 게 괴롭다”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교내 안팎에선 “‘문제없음’으로 종결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런데 가해자로 지목된 A양 부모는 신고를 당하자마자 변호사를 선임했다. 혹시라도 학폭 처분이 나와 자녀의 대학 입시 계획이 송두리째 망가..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68] 소란한 마음 고요해지도록 문태준 시인 입력 2025.04.27. 23:52 소란한 마음 고요해지도록 소란한 마음 고요해지도록 물푸레나무 잎에 실려 가는 새소리 바람소리 복잡한 마음 맑아지도록 아침 햇살에 찰랑이는 물속 산 그림자 후회하는 마음 남지 않도록 어제 잘못한 일은 어제 내가 먼저 사과하리 무거운 마음 가벼워지도록 오늘 해가 지기 전에 모든 걸 바람에 실어 보내리 -권달웅(1943-) 권달웅 시인은 등단 50년을 맞았다. 올해 초에 14번째 시집을 펴냈다. 이 시는 이러한 시인의 이력에 바탕해 삶의 지혜를 부드러운 언어로 드러낸다. 마음을 닦는, 수심(修心)의 시(詩)라고 해도 좋겠다. 시끄럽고 어수선하고, 뒤숭숭해 갈피를 잡기 어렵고, 회한과 아쉬움이 남아 있는 마음의 상태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
[만물상] 정신과 가는 어린이들 김민철 기자 입력 2025.04.27. 20:41 업데이트 2025.04.27. 23:49 매년 신학기 소아청소년과 진료실에는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다. 바로 복통이다. 하지만 상당수는 아무리 검사해도 뚜렷한 원인을 찾기가 어렵다. 단순한 신체적 증상처럼 보이지만 원인을 찾아보면 아이들 마음속 불안과 긴장 때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신학기 스트레스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증상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멍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드는 수치와 자료들이 늘고 있다. 서울 강남 3구에 사는 9세 이하 아동의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단이 4년 새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영어 유치원 입학을 위한 ‘4세 고시’, 초등 의대반에 가기 위한 ‘7세 고시’의 진원지여서 그런 결..
[만물상] '집 구경 요금' 김홍수 논설위원 입력 2025.04.25. 20:36 업데이트 2025.04.26. 00:01 17년 전 특파원으로 부임해 프랑스 파리에서 집을 구할 때 고생을 적잖이 했다. 프랑스에선 월세가 어지간히 밀려도 쫓겨나지 않을 만큼 세입자에 대한 법적 보호가 강해 집주인이 세입자를 까다롭게 선별한다. 우선 집 구경 자체가 쉽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신분과 소득이 증명돼야 집 구경 날짜를 잡아줬다. 약속된 날짜에 가보면 경쟁자 여럿과 함께 집을 구경해야 했다. 집주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 옷차림과 태도, 말투에도 엄청 신경을 써야 했다. ▶영국 런던도 파리만큼 집 구경하기가 어렵다.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집 구경(viewing appointment) 날짜를 잡는데, 집 구경 한 번에 75파운드(약 1..
[박성민의 정치 포커스] 국민의힘은 '3不 전략' 알고 있나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입력 2025.04.25. 00:02 전쟁이든 스포츠든 선거든 전력·전략·정신력에서 승패가 갈린다. ‘6·3 조기 대선’은 민주당이 세 가지 요소 모두 압도하고 있다. 전설적 복서 마이크 타이슨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얻어맞기 전까지는”이라는 유명한 말로 상대방을 싸우기도 전에 주눅 들게 했다. 국민의힘 눈에는 이재명이 타이슨처럼 보인다. 지난 17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 National Barometer Survey) 결과는 ‘정권 교체를 위해 야권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 54%, ‘정권 재창출을 위해 여권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 33%였다. 18일 발표한 갤럽 조사는 ‘더불어민주당 후보 당선’ 45%, ‘국민의힘 후보 당선’ 32%였다. 이재명 지지율은 양자..
[만물상] 정치 테마주도 세계 최대 김홍수 논설위원 입력 2025.04.24. 21:31 업데이트 2025.04.25. 00:04 지난해 7월 13일, 대선 유세장에서 트럼프 후보가 총격을 당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트럼프가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트(fight)’를 외치자, 증시에서 불이 났다. 트럼프가 만든 소셜미디어(SNS) 기업, 트럼프 미디어&테크놀로지(DJT) 주가가 74% 폭등했다. 반면 바이든 테마주였던 2차 전지, 태양광, 풍력 기업 주가는 폭락세를 면치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있었던 지난 4월 4일. ‘파면’ 결정이 내려지자 NE능률은 곧장 하한가(-30%)를 맞은 반면 상지건설은 상한가(+30%)로 치솟았다. NE능률은 대주주 회장이 같은 윤씨 문중이라는 이유로 윤석열 테마주, 상지건설은 과거 ..
마약 중독자 "죽고 싶어요"… 상담사는 새벽까지 그를 붙잡았다 국내 첫 마약 전화 상담 센터 가보니 정해민 기자 입력 2025.04.24. 01:27 업데이트 2025.04.24. 06:13 “마약 때문에 인생이 망가졌어요. 정말 죽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달 13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1342 상담 센터’에 전화가 걸려왔다. 본인을 ‘마약 중독자’라고 밝힌 A씨는 “교도소에 다녀왔는데 취업도 안 되고 삶에 희망이 없다. 자살하겠다”고 했다. 상담사는 “전화 잘 주셨다. 얼마나 힘드셨냐”며 안심시켰다. 그로부터 몇 시간, 통화는 날이 밝을 때까지 계속됐다. 상담사는 A씨가 잠이 든 걸 확인하고 전화를 끊었다. 센터에는 이런 전화가 하루 20~30통씩 온다. 마약의 늪에 빠져 고통을 겪으면서도 고민을 말할 곳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이..
[천현우의 세상 땜질] 교복 위에 입는 작업복… 당신은 아십니까 천현우 용접공·작가 입력 2025.04.24. 00:21 업데이트 2025.04.24. 01:05 인생게임이란 보드게임이 있다. 원문부터 The Game of life. 성인에서 시작해 칸이 앞으로 나갈수록 노년기로 향하는 구성이다. ‘인생’이란 큼직한 단어를 차용했지만 실제로는 ‘은퇴까지 얼마나 벌 수 있을까’가 핵심이다. 맨 마지막 칸에 도달하면 ‘은퇴’라는 설정이고, 모두가 은퇴했을 때 재산이 가장 많은 사람이 이긴다. 이 게임은 시작할 때 대학을 갈지 바로 취업할지 결정한다. 바로 취업하면 일찍 돈을 벌 수 있지만 고점이 낮다. 반면 진학하면 직장 생활이 늦어지고 학자금도 나가지만 취업 후 돈을 더 벌 수 있다. 1960년도에 출시한 이 고전 게임은 취업과 진학을 같은 선상에 두고 표현하고 있다...
선거철 되자 우후죽순 자서전... 그보다 한 줄 '참회록' 부터 쓰십시다 [윤동주 80주기 - 어둠 넘어 별을 노래하다] [3] 참회록 이숭원 서울여대 명예교수 입력 2025.04.24. 00:10 업데이트 2025.04.24. 06:55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 1942. 1. 24. 선거철이 되자 자서전 출판이 늘어났다..
[만물상] '분조장' 골든타임 15초 김민철 기자 입력 2025.04.23. 21:08 업데이트 2025.04.24. 00:03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부터 페르시아·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땅을 정복했지만 정복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마음이었다. 그가 28세 때 페르시아를 정복한 다음 부하들과 만찬을 함께 할 때 심복 중 한 명이 교만하지 말라고 직언했다. 격분한 왕은 위병의 창을 빼앗아 심복을 향해 던졌다. 창은 가슴을 관통했다. 왕은 곧바로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며 사흘 밤낮을 방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요즘으로 치면 분노 조절 장애를 의심해야 할 일이다. ▶서울 한 아파트에서 불을 지른 용의자가 숨지고 주민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60대 방화 용의자가 윗집 주민과 층간 소음 갈등을 겪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응급실 지키다가… 10분 만에 준비해 화재 현장으로 응급의학과 의사 현장 출동기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입력 2025.04.23. 01:20 업데이트 2025.04.23. 06:07 평소와 다르지 않은 아침 출근길이었다. 응급실 자리에 앉자마자 재난의료지원팀(DMAT: Disaster Medical Assistance Team)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목적지는 봉천동 아파트 화재 현장이었다. 큰 재난 상황임을 직감했다. 응급실을 지키는 의사가 현장까지 출동해야만 하는 드문 상황이기도 했다. 우리는 십 분 안에 시동을 걸고 현장으로 출발했다. 병원 소속으로 대기하는 구급차가 있었다. 우리 팀은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간호사, 응급구조사, 행정, 운전, 재난의료관리자까지 여섯 명이었다. 현장에서 환자를 처치할 수 있는 의료 장비가 든 카고백과..
[만물상] 교황의 묘비명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5.04.22. 20:12 업데이트 2025.04.23. 00:02 죽은 이의 삶을 기록하는 묘비명(墓碑銘)은 미라를 만들던 고대 이집트 때부터 있었다. 망자의 나이와 관직, 이름을 적었다. 로마인들은 묘비명에 망자의 삶도 담고자 했다. 눈길 끄는 문장이나 시(詩)로 인생을 축약했다. 오가는 사람들이 묘비명을 읽고 고인을 오래 기억하도록 묘를 붐비는 길가에 썼다. ▶묘비명 작성엔 문학적 함축과 은유, 기발한 아이디어가 동원된다. 심지어 문장을 쓰지 않기도 한다. 원주율을 소수점 이하 35개까지 계산한 네덜란드 수학자 뤼돌프 판쾰런의 묘비명은 그가 계산해 낸 원주율 숫자다. 가수 휘트니 휴스턴의 묘비명은 ‘THE VOICE(목소리)'다. 그녀의 팬들은 정관사 ‘the’를 붙임으로..
♥[박성희의 커피하우스] 곱셈을 아는 지도자를 보고 싶다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입력 2025.04.18. 00:02 두 종류의 지도자가 있다고 한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지도자와 상대방의 똑똑함을 이끌어낼 줄 아는 지도자다. 스스로 잘난 지도자는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해’라는 생각으로 모든 일에 관여하고 독점하며 상대방을 위축시킨다. 반면, 후자에 속하는 지도자는 상대방이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능력을 발휘하도록 격려한다. 글로벌 리더 150여 명을 탐구한 미국의 리더십 연구가 리즈 와이즈먼은 전자를 ‘디미니셔(Diminisher)’, 후자를 ‘멀티플라이어(Multiplier)’라고 명명했다. ‘디미니셔’는 글자 그대로 쪼그라뜨리는 사람, ‘멀티플라이어’는 ‘곱셈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
[만물상] '다크 패턴' 김홍수 논설위원 입력 2025.04.17. 21:12 업데이트 2025.04.17. 23:41 항공권 구매 사이트에서 제일 싼 티켓을 찾아내 결제하려고 보니, 특정 신용카드만 결제가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귀찮기도하고 시간이 아까워 결국 기존 신용카드로 살 수 있는 더 비싼 항공권을 구입하게 됐다. 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가성비 좋은 호텔을 힘들게 찾아 예약하려고 보면 수수료, 세금 등이 붙어 처음 제시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가격이 된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품절 임박’ 메시지가 뜨면, 조바심이 일며 급히 결제 버튼을 누르게 된다. 구매 대상을 찾고 있는데, ‘오늘 420명이 주문했어요’ ‘이 상품을 300명이 보고 있어요’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으면 홀린 듯 결제 코너로 직..
'이오지마 성조기'까지 기획·정리=박재형 기자 입력 2025.04.17. 15:11 일러스트=이철원 1945년 2월 19일 미 해병대가 일본 본토에 가까운 작은 섬 이오지마(硫黃島)에 상륙했다. ‘손바닥’만 한 이오지마 정도는 단숨에 점령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일본군은 섬 전체에 개미굴을 파고 미 해병대를 괴롭혔다. 일본군은 병사들에게 ‘미군 10명을 죽이기 전에는 죽지도 말라’고 명령했다. 첫날에만 미 해병대 2500여 명이 전사(戰死)했다. ▶이오지마에 고지는 수리바치라는 산 하나밖에 없다. 2월 23일 미 해병 5사단 28연대의 한 소대가 수리바치산 정상에 성조기를 꽂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경사가 심해 손과 무릎으로 기어올랐다. 동굴 속 일본군이 튀어나와 공격했다. 마침내 오전 10시 반쯤 미군 6명이 성조기를 올리는 데..
[신문은 선생님] [기후와 날씨] 개미가 일렬로 움직이면 비가 오고, 흩어지면 맑은 날… 왜 그럴까요? '기상예보관' 개미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 입력 2025.04.17. 05:03 최근 전국에 봄비가 내리며 조금씩 기온이 오르고 있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바뀌는 날씨 때문에 우산을 챙기지 못해 낭패를 본 분들도 있을 텐데요. 동물이나 곤충 중에는 예보만큼이나 날씨를 잘 알아맞히는 종이 있답니다. 대표적인 곤충이 개미예요. “개미는 5일 앞의 비를 알고, 뛰어난 장군은 100리 밖의 적을 알아차린다”라는 말도 있는데요. 개미는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기상 변화를 읽고 비가 올 것을 예측하고 대비하지요. 고사성어 중엔 ‘의봉혈우(蟻封穴雨)‘란 말이 있습니다. ‘개미 의(蟻)‘ ’봉할 봉(封)‘ ’구멍 혈(穴)‘ ’비 우(雨)‘ 자를 쓰는데, 비가 올 것 같으면 개미가 입구를 막는다는 뜻입니다. 그럼 ..
[임명묵의 90년대생 시선] 망해 가는 중국? 유튜브만 믿지 마라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입력 2025.04.17. 00:44 업데이트 2025.04.17. 09:54 시진핑이 경제 망쳐? 실상은 상하이 중산층 희생하는 '내륙 굴기' 내수 키우는 '쌍순환'·농민 지원 '三農' 정책으로 국토·산업 개편 중국 향한 오만, 한국을 망칠 위험… 中에 맞설 우리 전략은 뭔가 “중국이 힘을 충분히 기르기 전까지는 미국과 잘 지내야 한다는 덩샤오핑의 정책을 시진핑이 섣불리 깨버려 중국이 주저앉았다. 그러니 서방은 시진핑에게 감사해야 한다.” 익숙한 이야기다. 유튜브를 키면 비슷한 경제 해설 영상이 수두룩하다. 실제 지표로 봐도 그럴듯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전쟁 이후 중국 경제성장률은 큰 타격을 입었고, 첨단 산업도 광범위한 제재를 받았다. 미국은 여전히 전 세..
[만물상] 동물의 언어 곽수근 기자 입력 2025.04.16. 20:58 업데이트 2025.04.16. 23:41 ‘고양이 통역기‘인 미야오(야옹) 톡(Meow Talk)은 2000만건 이상 내려받은 스마트폰 앱이다. 아마존의 인공지능(AI) 비서 개발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고양이 울음소리 2억6000만건을 AI에 학습시켰다. 이용자가 고양이 소리를 앱으로 전송하면 AI가 “화났어요” “배고파요” 등으로 해석해주는 식이다. 개발사는 고양이 감정을 70% 이상 정확도로 알아맞힌다고 주장하나, 이용자들은 “사랑해요” “예뻐해 주세요”가 너무 많이 나온다며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동물의 언어에 대한 과학적 관심은 1960년대부터 본격화했다. 동물은 자극에 반응하는 단순 기계가 아니라,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라는 인..
[단독] 의대생 복귀율 낮지만, 내년 '증원 0명' 확정할 듯 40개 대학 총장들, 오늘 회의 최인준 기자 오주비 기자 입력 2025.04.16. 01:06 업데이트 2025.04.16. 11:15 의대가 있는 전국 40개 대학 총장들이 16일 2026학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증원 0명’(3058명)으로 확정할 전망이다. 교육부는 정상적인 수업이 가능한 수준으로 의대생들이 돌아오면 내년도 모집 인원을 ‘3058명’으로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아직 학생들의 수업 복귀율은 낮지만 현실적 문제들을 고려할 때 대학들이 ‘3058명’으로 확정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의대가 있는 40개 대학 총장 모임인 ‘의과대학 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의총협)’는 16일 오후 내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확정하는 회의를 연다. 교육부는 이날 대..
[만물상] 천국의 골프장, 오거스타 내셔널 최수현 논설위원·스포츠부 차장 입력 2025.04.15. 20:53 업데이트 2025.04.15. 23:38 올해 마스터스 골프 대회 우승자 로리 매킬로이는 “남은 생에 오직 한 골프장에서만 플레이 해야 한다면”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을 택하겠다고 했다. “지구상에 더 아름다운 코스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부분 선수들 생각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매년 마스터스를 개최하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은 그림 같은 풍경과 완벽한 코스 관리로 ‘천국의 골프장’이란 평을 받는다. 1930년대 문을 연 오거스타 내셔널은 다른 골프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코스 관리팀 자체가 모두 세계 최고 전문가들이다. 마스터스 기간엔 세계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드는데, 선발되려면 충분한 업계 경험에 신뢰할 만한..
착한 택시라더니… 논란 싣고 달리는 택시협동조합 기사들이 낸 출자금 배임·횡령 김아사 기자 입력 2025.04.15. 00:53 업데이트 2025.04.17. 16:11 법인택시 업체들이 경영난과 수익성 악화에 허덕이는 사이 개인택시와 법인택시 중간 성격의 ‘택시 협동조합’이 전국적으로 100곳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협동조합들이 ‘사납금을 없앤 착한 택시’라는 점을 내세워 기사 가입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협동조합 증가가 택시 업계 전체를 흔들 뇌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사들이 협동조합에 가입할 때,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1억원 가까운 목돈을 내야 하는데 이 돈의 사용이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택시 기사 70%가 60세 이상 고령으로 노후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