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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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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7] 관문(關門)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7.10. 03:14 “그대에게 권하노니 술 한 잔 더 드시게, 서쪽으로 양관을 나가면 아는 이 없으리니(勸君更進一杯酒, 西出陽關無故人)”라는 명구가 있다. 당나라 문인 왕유(王維·701~761)의 작품이다. 먼 곳으로 떠나는 지인에게 술 한 잔 권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구 가운데에서는 절창(絶唱)으로 꼽힌다. 여기 나오는 양관(陽關)은 지금 중국 둔황(敦煌)에 있던 당나라의 서남쪽 경계다. 그 북쪽에 있던 옥문관(玉門關)과 함께 서역(西域)을 향해 나갔던 마지막 국경 관문(關門)이라 아주 유명하다. 이별의 정서를 다루는 문학작품에 곧잘 등장한다. 중국에는 관문이 참 많다. 유비(劉備)가 죽은 뒤 북벌에 나서는 제갈량(諸葛亮)이 자주 넘었던 검문관(劍門關), ..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6] 동류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7.03. 03:12 북송(北宋·960~1127) 때의 문인 소식(蘇軾)이 삼국(三國·220~280) 시절의 적벽(赤壁)을 회고한 문구가 있다. 시작이 이렇다. “큰 강이 동쪽으로 흘러, 물결이 천고의 영웅을 다 휩쓸고 지나갔다(大江東去, 浪淘盡, 千古風流人物).” 중국의 대부분 하천은 동쪽으로 흐른다.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지세(地勢) 때문이다. 이른바 서고동저(西高東低)의 지형이다. 가장 서쪽에는 매우 높은 고원, 다음 단계는 산지(山地)가 이어지다가 동쪽으로 진입하면서 드넓은 평원(平原)을 보인다. 세 단계의 사다리꼴 지형이 중국 땅의 특성이다. 따라서 물은 동류(東流)하기 마련이다. 가장 대표적인 남쪽의 장강(長江)과 북쪽의 황하(黃河)를 비롯해 ..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5] 대륙의 홍수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6.25. 03:10 중국에서 ‘옛날’을 지칭하는 한자 석(昔)의 본래 글꼴이 흥미롭다. 이 글자의 초기 모습에는 해와 물이 등장한다. 물에 잠긴 해, 또는 해가 떠있는 하늘 아래 넓게 펼쳐진 물의 모습이다. 나중 이 글자의 새김은 ‘옛날’ ‘이전’ 등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는다. '옛날'을 지칭하며 중국인들이 잠재의식 속에 떠올렸던 이 해와 물은 뭘까. 해석이 조금 갈리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큰물, 즉 대규모 홍수(洪水)에 관한 기억이리라는 추정이다. 이 풀이가 맞는다면, 중국인의 '옛날'은 큰물로 인한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다. 실제 중국이라는 땅에는 아주 많은 재난이 닥쳤다. 그중에서 홍수는 가뭄에 못지않게 매우 빈번했던 자연재해다. 유력한 통계에 따르..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4] ‘짐(朕)’이 부른 외로움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6.19. 03:14 텔레비전 사극 등에서 왕조의 최고 권력자가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이 있다. 짐(朕)이다. 이 글자의 유래를 찾다 보면 조짐(兆朕)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본래는 어떤 ‘틈새’ 등을 가리키는 글자였기 때문에 ‘조짐’이라는 말로 발전했을 듯하다. 처음 쓰임은 그랬지만 이 글자는 옛 중국에서 대개 1인칭 대명사, ‘우리’라는 뜻의 호칭으로 잘 쓰이다가 중국 판도를 최초 통일로 이끈 진시황(秦始皇) 때 이르러 제왕이 스스로를 칭하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고대 동양의 군왕을 모시는 일은 아주 두려웠다. 반군여호(伴君如虎)라는 성어가 나온 이유다. 임금 모시기가 호랑이 대하듯 어렵다는 얘기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아울러 제..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3] 길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6.12. 03:12 남송(南宋)의 유명 시인 육유(陸游)가 길을 묘사한 시구는 퍽 유명하다. 산과 물이 계속 겹쳐지는 경우를 그렸다. “산중수복의무로(山重水複疑無路)”다. 산과 물[山水]이 줄곧 이어져[重複] 더 이상 길이 없어 보인다는 뜻이다. 앞부분은 달리 ‘산궁수진(山窮水盡)’으로 적기도 한다. 산길이나 물길이 다 막힌 상황이다. 모두 더 이상 나아가기 힘든 상태, 궁지에 몰린 경우다. 다니기 힘든 길인 험로(險路)에 갇힌 사람의 형편이다. 길에 관한 중국인의 심사는 복잡하다. 우선 다니기 쉬운 길에 집착한다. 평평(平平), 평로(平路), 평탄(平坦), 평전(平展), 탄탄(坦坦), 대도(大道), 대로(大路) 같은 단어가 그 맥락이다. 좋은 길에 관한 ..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2] 통치와 복종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6.05. 03:12 충신(忠臣)이나 효자,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세웠던 붉은 문이 있다. 우리는 보통 정문(旌門)으로 적지만 홍살문, 정려문, 홍문으로도 부른다. 왕조가 지향하는 가치에 가장 충실한 이를 표창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따라 배우도록 하는 기능이다. 그 원류는 역시 중국이다. 한(漢)나라 때는 궐(闕)이라는 명칭이었다가 유교의 통치 이념이 최고조로 발달했던 명(明)과 청(淸)에 들어서는 패방(牌坊) 또는 패루(牌樓)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둘은 거의 같지만 지붕 양식이 없으면 패방, 있으면 패루다. 명과 청나라 왕조의 수도였던 베이징(北京)에는 그런 패방과 패루가 즐비하다. 왕조의 통치 이념에 가장 충실했던 황도(皇都)였기에 그렇다. 나..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1] 성벽(城壁)과 교량(橋梁)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5.29. 03:14 외부 위협으로부터 제 안전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담을 쌓는다. 성벽(城壁)은 그래서 ‘전쟁 의식’의 소산이다. 담을 올리는 작업은 축성(築城)이다. 중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에 집착하는 특징을 보인다. 신석기 시대 이후 청(淸) 이전까지 중국은 길고 굳센 담을 쌓고 또 쌓았다. 인류가 쌓은 세계에서 가장 긴 담, 중국 '만리장성(萬里長城)'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에서 그 점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언어의 흔적에서도 이 점은 두드러진다. 위기가 올 때마다 예나 지금의 중국은 늘 "여럿의 뜻으로 성을 쌓자(衆志成城)"는 구호를 외친다. 아주 튼튼한 장벽을 세우려는 갈망은 '구리와 쇠로 만든 담(銅牆鐵壁)'이라는 성어도 낳았다. 견고한 성벽 앞..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0] 중국에 내리는 비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5.21. 21:30 업데이트 2020.05.21. 23:29 비는 많이 와도 말썽이다. 재난이 자주 닥쳤던 중국에서는 그런 비를 바라보며 키운 사람들의 노심(勞心)과 초사(焦思)가 제법 깊다. 비를 소재로 명시(名詩)를 남긴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도 그중 하나다. 그는 참혹한 내전인 ‘안사지란(安史之亂)’을 피해 760년 지금의 쓰촨(四川) 청두(成都)로 쫓겨 가 지인의 도움으로 겨우 초가집 한 채를 마련했다. 이듬해 두보는 ‘가을바람에 초가지붕이 뜯기다(茅屋爲秋風所破)’라는 시를 쓴다. 거세게 불어닥친 그해 가을 비바람에 지붕이 날아갔다. 동네 개구쟁이들은 일부를 주워 내뺐다. 지붕이 사라져 차가운 비를 맞으며 잠자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깊은 시름에 젖은..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89] 삼계탕(蔘鷄湯)과 중국인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5.15. 03:12 중국인들에게 한국 삼계탕(蔘鷄湯)은 명성이 자자하다. 고려 인삼에 닭을 함께 끓여 내놓는 요리라 유명하다는 게 일반의 생각이다. 그러나 중국인에게 닭고기를 넣고 끓인 탕, 즉 계탕(鷄湯)이 주는 의미를 먼저 짚어 볼 일이다. 음식으로 몸의 에너지를 보탠다는 '식보(食補)'의 개념은 세계에서 중국인이 가장 잘 따진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인이 으뜸으로 꼽는 음식이 계탕이다.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양생(養生)과 면역(免疫) 기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몸이 허약해진 아이에게 엄마가 흔히 끓여주는 계탕은 중국인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게다가 한국의 삼계탕은 고기가 질기지 않은 연계(軟鷄)에 약효가 높은 인삼까지 더해 중국인에게는 ..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88] ‘늑대’ 꿈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5.08. 03:13 글 읽는 사내가 어느 날 중산(中山)이라는 곳을 향했다. 사냥꾼에게 쫓기던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나 “자루에 숨겨달라”고 애걸했다. 마음 약한 사내는 늑대를 살렸다. 사냥꾼이 지나간 다음 늑대는 돌변해 사내의 목숨을 노린다. 전통의 맥락에서 중국인들이 늑대를 보는 시각이다. 이른바 ‘중산랑(中山狼)’이라는 유명 우화다. 늑대를 지칭하는 중국 언어들도 결코 곱지 않다. 탐욕스러운 사람을 지칭하는 시랑(豺狼) 등이 대표적이다. 앞뒤 다리가 각기 짧은 늑대 종류 둘이 만나 하나를 이루는 전설상의 짐승은 낭패(狼狽)다. 이 말 쓰임새도 역시 좋지 않다. 늑대가 몸을 틀었던 자리의 모습은 나뭇가지들이 엉켜 어지럽다. 그를 일컫는 말이 낭자(狼藉)다..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87] 우환의식(憂患意識)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5.01. 03:12 계란 쌓기, 살얼음 딛기는 한자어로 누란(累卵)과 이빙(履氷)이다. 누란지위(累卵之危), 여리박빙(如履薄氷)의 준말이다. 아주 위험한 경우를 일컫는 말들이다. 한자어에는 이처럼 위기와 대응에 관한 표현이 매우 풍성하다. 우선 유방(劉邦)에게 쫓긴 항우(項羽)가 막다른 지경에 몰린 경우를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한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퍽 친근하다. 잘못 건드리면 그대로 터져버리는 상황은 일촉즉발(一觸卽發)이다. 옛 문인들이 문자놀이를 벌이다가 "가장 위험한 경우를 형용해보자"며 내기를 건 적이 있다고 한다. '백세 늙은이 나뭇가지 끝에 매달리기' '우물 위 도르래에 아기 놔두기' 등 희한한 표현이 나오다가 급기야 '장님이 야밤에 눈먼 말 ..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86] 복잡한 싸움법의 한계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4.24. 03:13 건괵(巾幗)이라는 낯선 단어가 있다. 본래는 중국 선진(先秦) 때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모자 등 머리에 쓰는 수식(首飾)이었다. 그러나 한(漢) 이후에는 여성이 머리에 두르는 모자와 장식을 지칭했다. 유비(劉備)가 죽자 제갈량(諸葛亮)은 여러 차례 북벌(北伐)에 나섰다. 그를 맞이하는 위(魏)나라의 최고 지휘관은 사마의(司馬懿). 그러나 사마의는 후방 보급이 문제였던 제갈량의 도전을 아예 무시하며 싸움에 나서지 않았다. 그를 싸움터에 끌어들이기 위해 제갈량이 사마의에게 보낸 물건이 '건괵'이다. 이 단어의 용례는 우리에게 흔치 않으나 중국에서는 퍽 많다. 특히 스포츠 등 특정 분야에서 큰 업적을 쌓은 '여장부'에게 곧잘 붙이는 단어다. 제..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85] 몸집만 큰 ‘아기’들의 나라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4.16. 21:45 업데이트 2020.04.16. 23:13 중국의 면적은 960만㎢다. 유럽연합에 시베리아를 뺀 러시아 일부를 합쳐야 가능한 크기다. 그러니 대국(大國)임에는 분명하다. 그런 크기의 중국을 형용하는 말은 앙앙(泱泱)이다. 아주 넓은 땅을 뜻한다. 그래서 자부심 또한 유명했다. ‘세상 중심에 내가 있다’는 나라 이름 중국(中國), 땅의 왕조를 하늘에서 내려온 천조(天朝)로 자칭한 경우가 다 그렇다. 다스리는 구역은 천하(天下)라고 했다. 그 땅 사람들도 크고 멋졌을까. 최근 2~3년 중국 사회에서 크게 유행했던 단어 하나는 거영(巨嬰)이다. 몸은 자랐으나 마음은 영글지 못한 아기를 일컫는다. 2017년 금서(禁書)에 오른 '거영국(巨嬰國)'..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84] 커튼으로 가린 중국인 생각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4.09. 21:30 업데이트 2020.04.09. 23:22 아래위로 오르내리는 커튼은 막(幕)이다. 좌우로 여닫는 그것은 유(帷)다. 옛 중국의 구별이다. 담으로 집, 나아가 국가 경계까지 두르는 중국의 ‘담장 문화’에서 이런 커튼은 최종으로 자신을 가리는 장치다. 상하(上下), 좌우(左右)로 여닫는 구별 없이 중국 커튼의 대명사는 그래도 ‘막’이 우선이다. 입막지빈(入幕之賓)이라는 성어가 있다. 커튼 안쪽으로 들이는 손님이라는 풀이다. 속뜻은 가장 내밀한 사람, 그래서 기밀(機密)까지 공유하는 인물을 일컫는다. 보통은 책사(策士)를 가리킨다. 생사존망(生死存亡)에 부귀영달(富貴榮達)을 함께 논의하는 사이라서 가장 깊숙이 쳐놓은 커튼 뒤로 들일 수 있는 ..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83] 간부(幹部) 천국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4.03. 03:13 우리 국어사전에도 ‘탄관(彈冠)’이라는 단어가 올라 있다. 중국 동한(東漢) 때 친구 덕으로 벼슬자리에 나갈 수 있었던 사람이 제 모자[冠]를 꺼내 먼지를 털며[彈] 기뻐했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 의관(衣冠)이라는 단어는 옷과 모자를 우선 가리키지만, 문화적 함의로는 문물(文物)과 지식(知識)이나 제도(制度)까지 포함한다. 옷과 모자를 제대로 차려입거나 쓰는 사람이 지닌 사회적 역량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다. 따라서 옷과 함께 모자는 사람의 지위를 상징한다. 중국인은 특히 위정자가 쓰는 관모(官帽)를 매우 중시했다. ‘과거 급제 명단에 이름 올릴 때(金榜題名時)’를 인생 사대(四大) 기쁨 중 하나로 꼽았으니 말이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82] 중국의 최대 성씨(姓氏)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3.26. 21:34 업데이트 2020.03.27. 01:52 14억 인구의 중국에는 성씨(姓氏)가 참 많다. 앞머리를 차지하는 성으로는 이(李), 왕(王), 장(張), 유(劉), 진(陳)이다. 그다음은 양(楊), 조(趙), 황(黃), 주(周), 오(吳)의 순이다. 이들 상위 10개의 성씨 전체 인구는 5억5000만명이다. 제법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중국인도 살아생전에는 좀체 마주치기 힘든 성씨가 여럿 있다. ‘없다’는 뜻의 무(無), ‘죽다’는 새김의 사(死), ‘짐승’의 축(畜), 사람의 성별인 남(男), 수컷 생식기 고(睾), 머리카락 없는 ‘민머리’ 독발(禿髮)씨 등이다. 최근 중국 인터넷 세계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성은 조(趙)다. 네티즌들은 흔히 ..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82] 중국의 최대 성씨(姓氏)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3.26. 21:34 업데이트 2020.03.27. 01:52 14억 인구의 중국에는 성씨(姓氏)가 참 많다. 앞머리를 차지하는 성으로는 이(李), 왕(王), 장(張), 유(劉), 진(陳)이다. 그다음은 양(楊), 조(趙), 황(黃), 주(周), 오(吳)의 순이다. 이들 상위 10개의 성씨 전체 인구는 5억5000만명이다. 제법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중국인도 살아생전에는 좀체 마주치기 힘든 성씨가 여럿 있다. ‘없다’는 뜻의 무(無), ‘죽다’는 새김의 사(死), ‘짐승’의 축(畜), 사람의 성별인 남(男), 수컷 생식기 고(睾), 머리카락 없는 ‘민머리’ 독발(禿髮)씨 등이다. 최근 중국 인터넷 세계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성은 조(趙)다. 네티즌들은 흔히 ..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81] 유연함을 잃어가는 중국 외교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3.20. 03:12 합종연횡(合從連橫)은 매우 익숙한 성어다. 세로로, 가로로 연대해 자신을 위협하는 상대에게 맞서는 전략의 하나다. 원교근공(遠交近攻)도 그렇다. 먼 곳과 유대를 맺어 가까운 적에게 대응하는 방식이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따지는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중국식 전통 외교 책략들이다. 유연한 시야로 멀리 내다보는 장점이 있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으며 주변과 느슨하게 교류하는 기미(羈縻)의 방식 또한 그 노력의 산물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독립자주(獨立自主)와 평화(平和)라는 원칙으로 외교의 틀을 구성했다. 얼마 전까지 중국이 유지해온 외교 전략의 근간은 전통적 개념으로 보면 도광양회(韜光養晦)다. 제가 지닌 장점의 예리한 빛을 감..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80] 중국인의 門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3.13. 03:12 816년 가을. 정쟁에 밀려 장시(江西)의 외딴 지역으로 좌천당한 문인 백거이(白居易)는 ‘비파행(琵琶行)’이라는 유명한 시를 쓴다. 퇴기(退妓)로 쓸쓸한 삶을 살던 여인을 만나 비파 연주를 들으면서다. 616자(字)의 작품에는 멋진 시구가 넘친다. 나이 든 기생이 제 신세를 한탄하며 “사람 찾지 않아 문 앞이 쓸쓸해졌다(門前冷落車馬稀)”고 한 표현도 그 하나다. 그때부터 문전냉락(門前冷落)은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성어로 발전했다. 중국인의 '문'은 조금 특별하다. 권세(權勢) 유무(有無), 출세(出世) 여부(與否)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로 곧잘 쓰인다. 우선 성어 문전성시(門前成市)가 그렇다. 찾는 사람이 아주 많아 문 앞이 장터처럼 ..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79] 뒤로 슬쩍 물러서기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3.06. 03:13 내 잘못을 남에게 돌리는 일이 전가(轉嫁)다. 화근을 남에게 슬쩍 돌려 자신은 그로부터 물러나는 행위는 가화(嫁禍)다. 드러나지 않게 남을 해친다는 점에서 모두 음해(陰害)다. 요즘 중국의 인터넷에서 이런 행위를 지칭하는 유행어가 있다. 엉뚱하게 중국 음식점에서 쓰는 큰 팬이 등장한다. 흔히 ‘웍(wok)’이라고 불리는 조리 도구다. 광둥(廣東)에서 이를 지칭하는 ‘가마’, 즉 확(鑊)의 현지 발음이다. 이 팬은 일반 중국어에선 과(鍋)라고 적는다. 이 글자는 '잘못'을 뜻하는 과(過)와 발음이 같다. 따라서 '팬을 등에 지다'는 뜻의 배과(背鍋)라고 적으면 '잘못을 뒤집어쓰다'와 같아진다. 특히 '아주 억울하게 뒤집어쓰는 잘못'을 지칭..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78] 楚나라 땅의 苦楚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2.28. 03:14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발생지 우한(武漢)과 주변 후베이(湖北)는 본래 전통의 중국과는 사뭇 달랐던 초(楚)나라 땅이었다. 그래서 춘추시대 중원 사람들은 이곳 사람을 남녘의 오랑캐, 남만(南蠻)으로 치부했다. 이 지역의 다른 지칭은 형초(荊楚)다. 전략적 요충지여서 ‘삼국지(三國志)’의 큰 무대이기도 했던 형주(荊州)를 강조한 이름이다. 그러나 글자의 새김으로 따지면 이 ‘형초’라는 이름은 썩 좋지 않다. 두 글자 모두 사람을 때리는 형구(刑具)인 ‘가시나무’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우리말 고초(苦楚), 통초(痛楚), 간초(艱楚) 등도 다 이 글자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픔’ ‘고생’ ‘시련’ 등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곳 사람들도 대개는..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77] 담을 넘는 중국인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2.21. 03:12 담을 넘는 행위가 ‘담치기’다. 개도 궁지에 몰리면 그렇게 한다. 중국인이 잘 쓰는 성어 구급도장(狗急跳墻)의 경우다. 참선(參禪)에 빠져 있다가 입맛을 자극하는 향긋한 냄새를 참다못해 담을 넘었던 사람도 있다. 중국 탕(湯) 요리의 정수, 불도장(佛跳墻)의 유래를 설명하는 얘기다. 우리 식도락가들에게도 꽤 유명한 음식이다. 여기서 ‘도장(跳墻)’이 담을 넘는 행위다. 일반적 한자 표현으로는 월장(越墻)이다. 유장(逾墻)으로 쓸 때도 적잖다. 중국 문학사에 담을 애처롭게 넘나든 사람의 이야기가 하나 있다.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작품이다. 그가 전란의 와중인 어느 날 저녁 무렵 석호(石壕)라는 마을에 들렀을 때다. 두보는 한밤중..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76] 재난과 굶주림의 땅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2.14. 03:12 벌겋게 색을 드러낸 땅이 천 리…. 적지천리(赤地千里)다. 본래 지독한 가뭄을 가리킨다. 큰물의 사나움은 홍수맹수(洪水猛獸)라고 했다. 수해(水害)의 지칭이다. 산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면 산붕지열(山崩地裂)이다. 지진(地震)의 다른 표현이다. 중국에서 발달한 어휘들이다. 가뭄, 홍수, 지진 등 재난(災難)의 상처 때문이다. 천연재해는 중국 땅을 수놓았던 큰 주제다. 그 빈도와 피해의 규모가 몹시 잦으며 컸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재난 뒤에 닥치는 기아(飢餓)도 심각했다. 서구 학계는 그래서 중국을 아예 ‘The land of famine’이라고 부른다. 중국의 번역은 ‘기황지국(饑荒之國)’이고, 우리 식으로 옮기면 ‘굶주림의..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75] 중국의 ‘일언당’ 문화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2.07. 03:12 중국의 전통 건축에 당(堂)이라는 영역이 있다. 일반 주택을 지을 때도 꽤 주목을 받았다. 외부에 공개가 가능하며,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치르는 열린 장소다. 그래서 아주 번듯하고 멋지게 짓는다. 의젓하고 품위 있는 사람에게 ‘당당(堂堂)하다’라고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집채의 그런 생김새 때문이다. 나중에는 상거래를 하는 점포의 이름, 개인적인 거주 공간의 호칭에도 많이 등장한다. 요즘도 ‘일언당(一言堂)’이라는 말을 잘 쓴다. 본래는 ‘가격 정찰제’를 하는 점포에서 유래했다. 물건의 값을 흥정하지 않고, 한번 정한[一言] 가격에 그대로 판다는 뜻에서 생긴 이름이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 바탕은 이 이름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나중에는 ..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74] 노비의 얼굴과 무릎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1.31. 03:13 나를 낮춰 남을 높이는 과거 호칭이 제법 많다. 이른바 인비달존(因卑達尊)의 격식이다. 예치(禮治)를 근간으로 삼았던 이전 동양 사회가 피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정치 체제에서는 그 정도가 심했다. 황제를 폐하(陛下), 제후를 전하(殿下)라고 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계단[陛] 밑[下]의 내가 그 위의 황제를 치켜세우며 ‘폐하’라고 불렀다. ‘전하’는 전각(殿閣) 아래의 내가 그 위의 제후를 받드는 호칭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유행했던 각하(閣下)도 마찬가지다. 관공서를 지칭하는 각(閣)의 아래 사람이 윗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자리 밑의 제자는 스승을 좌하(座下), 좌전(座前)이라고 했다. 귀하(貴下)는 남을 높이는 흔한 존칭이다. 가장 ..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73] 질질 끌다가 흐지부지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1.24. 03:09 늘 패배하지만 “계속 싸워 계속 진다”와 “줄곧 져도 줄곧 싸운다”는 어감이 하늘과 땅 차이다. 한자 표현에서는 글자만 살짝 바꿔도 이런 효과가 난다. 누전누패(屢戰屢敗)와 누패누전(屢敗屢戰)이다. 우리 식으로는 연전연패(連戰連敗)와 연패연전(連敗連戰)이다. 민란 진압에 나선 청 말 대신 증국번(曾國藩)의 부하가 잇따라 패하자 "줄곧 지고 있다"는 보고를 내려다가 막료의 아이디어를 채택해 "패해도 계속 싸운다"로 고쳐 올려 면책을 피할 수 있었다는 일화에서 비롯했다. 닥친 위기를 우선 모면하고 보자는 이런 꾀는 "큰일은 작은 일로, 작은 일은 없던 일로 한다[大事化小, 小事化了]"는 문화가 그 토대다. 본래 웬만한 일에는 놀라서 허둥대지..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72] 분열과 통일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1.17. 03:12 실의 여러 갈래를 잘 묶으려면 뚜렷한 가닥이 필요하다. 이른바 두서(頭緖)다. 그를 중심으로 다른 여러 가닥을 묶어야 든든한 밧줄도 만든다. 이를 대표적으로 말해주는 한자는 통(統)이다. 통합(統合), 통일(統一), 통치(統治), 정통(正統) 등의 조어가 즐비하다. 중국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관련 단어는 일통(一統)이다. 새김은 ‘통일’과 비슷하지만, 중심축(軸)을 설정해 다른 것을 지배한다는 정치적 의미에서는 유래가 훨씬 오래다. 중국의 역대 위정자에게는 그래서 ‘정통’을 차지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중심축 가장 바른 자리에 올라서 남을 ‘통치’하기 위해서다. 요즘은 그 정통을 중심(中心), 핵심(核心) 등으로도 적는다. 현대 중국 집권..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71] 民生과 도탄(塗炭)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1.10. 03:12 집안 형편이 경제적으로 매우 쪼들리는 경우를 가난이라고 한다. 한자 단어 간난(艱難)이 순우리말로 변한 결과다. 본래는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많은 경우의 심한 어려움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보통 곤란(困難)이라는 말을 잘 쓴다. 삶의 환경이 가혹한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를 물과 불로 설명할 때도 있다. 깊어진 물, 너무 뜨거운 불을 가리키는 성어 수심화열(水深火熱)이다. ‘맹자(孟子)’에 나오는 말이다. 물과 불만을 강조해 아예 수화지중(水火之中)으로도 적는다. 우리에게 친숙한 '도탄(塗炭)'도 그 맥락이다. 앞의 도(塗)는 물이 거세게 휩쓸고 지나간 뒤의 진창, 뒤의 탄(炭)은 불길이 남긴 숯 바닥이다. 그래서 민생이 어려워졌을 때 "..
“10~11월 휴강한 교수 제보해달라” 입시 1타 강사의 수소문, 왜 김승현 기자 김병권 인턴기자(서강대 국어국문학과 졸업예정) 입력 2023.07.15. 03:00 업데이트 2023.07.15. 07:02 대치동 학원가의 ‘1타 강사’가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위원을 알아내기 위해 제보를 받고 사례를 약속했던 사실이 14일 알려졌다. 실제로 대치동에서는 대입 강사들이 “수능 출제 위원을 알고 있다”는 식으로 자신을 홍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학원가에서는 대입 강사와 수능 출제자의 유착 관계는 공공연한 일이었다는 말이 나왔다. 수능 국어영역 강사인 A씨는 작년 말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10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수업을 갑자기 하지 않는 교수님이 있다면 제보를 부탁한다. 최초 제보자 위주로 사례하겠다. 메시지를 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글이 올라온 때는 2022..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70] 요즘 중국인의 金銀銅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1.03. 03:12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1~3위 선수들은 차례대로 금, 은, 동으로 만든 메달을 받는다. 가장 높게 치는 황금(黃金), 그다음의 백은(白銀), 마지막의 청동(靑銅)이다.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 기준이랄 수 있다. 중국인도 금과 은을 향한 집착이 아주 강하다. "난세에는 황금을 사둔다(亂世買黃金)"는 말이 불문율처럼 지켜진다. 공부의 지향도 결국 잘사는 데 있다는 점을 "책에 황금의 집이 있다(書中自有黃金屋)"는 권학문(勸學文)으로 내려 앉힌 전통도 있다. 이런 금과 은, 동을 활용해 만든 요즘 중국의 유행어가 있다. 금교(金橋), 은로(銀路), 동루(銅樓)다. 다리를 놓으면 금, 길을 내면 은, 집을 지으면 동이라는 뜻이다. 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