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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88] ‘늑대’ 꿈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5.08. 03:13

글 읽는 사내가 어느 날 중산(中山)이라는 곳을 향했다. 사냥꾼에게 쫓기던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나 “자루에 숨겨달라”고 애걸했다. 마음 약한 사내는 늑대를 살렸다. 사냥꾼이 지나간 다음 늑대는 돌변해 사내의 목숨을 노린다. 전통의 맥락에서 중국인들이 늑대를 보는 시각이다. 이른바 ‘중산랑(中山狼)’이라는 유명 우화다. 늑대를 지칭하는 중국 언어들도 결코 곱지 않다. 탐욕스러운 사람을 지칭하는 시랑(豺狼) 등이 대표적이다.

앞뒤 다리가 각기 짧은 늑대 종류 둘이 만나 하나를 이루는 전설상의 짐승은 낭패(狼狽)다. 이 말 쓰임새도 역시 좋지 않다. 늑대가 몸을 틀었던 자리의 모습은 나뭇가지들이 엉켜 어지럽다. 그를 일컫는 말이 낭자(狼藉)다. "유혈(流血)이 낭자하다" 등으로 역시 용례가 개운치 않다.

따라서 '늑대 성품[狼性]'으로 적으면 욕심 많고, 사나운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선가 중국은 이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2004년 나온 소설 '늑대 토템(狼圖騰·Wolf Totem)'이 그 계기다. 농경문화에서 오래 쌓인 중국인의 '순한 양의 성품[羊性]' 문화를 늑대의 그것으로 개조해야 외국의 침략을 더 이상 받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로부터 중국의 '늑대 성품'은 그야말로 봇물을 이뤘다. 5G의 선두 주자로 세계 정상을 꿈꿨던 화웨이(華爲)가 기업 이념을 그로써 무장했다. 얼마 전에는 무협 활극에 가까워 '중국판 람보'라는 평을 받았던 극단적 애국 영화도 '싸움 늑대[戰狼]'라는 제목을 달고 등장해 큰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세계를 앞서가는 늑대[頭狼]’이고자 했던 중국의 처지는 코로나19 등의 사태로 세계의 외면을 받는 ‘외로운 늑대[孤狼]’의 입장으로 전락할 상황이다. 함축적이고 유연해 장점이 많았던 중국의 전통을 굳이 왜 늑대라는 이미지로 연역했을까. 요즘 중국의 문제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戰狼

원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07/20200507047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