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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89] 삼계탕(蔘鷄湯)과 중국인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5.15. 03:12

중국인들에게 한국 삼계탕(蔘鷄湯)은 명성이 자자하다. 고려 인삼에 닭을 함께 끓여 내놓는 요리라 유명하다는 게 일반의 생각이다. 그러나 중국인에게 닭고기를 넣고 끓인 탕, 즉 계탕(鷄湯)이 주는 의미를 먼저 짚어 볼 일이다.

음식으로 몸의 에너지를 보탠다는 '식보(食補)'의 개념은 세계에서 중국인이 가장 잘 따진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인이 으뜸으로 꼽는 음식이 계탕이다.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양생(養生)과 면역(免疫) 기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몸이 허약해진 아이에게 엄마가 흔히 끓여주는 계탕은 중국인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게다가 한국의 삼계탕은 고기가 질기지 않은 연계(軟鷄)에 약효가 높은 인삼까지 더해 중국인에게는 최고 음식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이 삼계탕보다 중국인에게 더 유명한 계탕이 있다. '심령계탕(心靈鷄湯)'이다. 미국 작가의 'Chicken Soup for the Soul'의 중국어 번역본이다. 1993년부터 2016년의 시리즈 출판에 중국인들이 아주 열광한 책이다. 긍정적 에너지를 부추기는 내용 일색이다. 개혁·개방 이후 왕성해진 중국 경제 발전의 분위기가 그에 한몫했다고 보인다. 그러나 요즘의 중국 '계탕'은 의미가 싹 달라졌다. 인터넷상 의미는 '하나 마나 한 소리' '공자님 말씀' 정도다.

이제 중국 네티즌들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는 푸시킨의 시구조차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내일 당신은 또 속을 테니까…"라고 바꿔버린다. 사회의 위선을 향한 조롱과 야유가 들어있다.

그래서 ‘계탕문(鷄湯文)’이라고 적으면 “쓸데없는 글”, ‘계탕도(鷄湯圖)’라고 하면 “연출한 사진” 정도의 뜻이다. 집권 공산당의 선전도 이제는 인터넷에서 걸쭉한 닭 국물을 뒤집어쓸 때가 많다. 요즘 중국 사회 분위기의 한 단면이다.

심령계탕

 

Chicken Soup for the Soul

 

푸시킨

 

원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14/20200514047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