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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87] 우환의식(憂患意識)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5.01. 03:12

계란 쌓기, 살얼음 딛기는 한자어로 누란(累卵)과 이빙(履氷)이다. 누란지위(累卵之危), 여리박빙(如履薄氷)의 준말이다. 아주 위험한 경우를 일컫는 말들이다. 한자어에는 이처럼 위기와 대응에 관한 표현이 매우 풍성하다. 우선 유방(劉邦)에게 쫓긴 항우(項羽)가 막다른 지경에 몰린 경우를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한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퍽 친근하다. 잘못 건드리면 그대로 터져버리는 상황은 일촉즉발(一觸卽發)이다.

옛 문인들이 문자놀이를 벌이다가 "가장 위험한 경우를 형용해보자"며 내기를 건 적이 있다고 한다. '백세 늙은이 나뭇가지 끝에 매달리기' '우물 위 도르래에 아기 놔두기' 등 희한한 표현이 나오다가 급기야 '장님이 야밤에 눈먼 말 타고 깊은 물 옆 거닐기'가 1등을 차지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 성어는 '맹인할마(盲人瞎馬)'다.

전쟁과 재난을 수도 없이 겪어야 했던 중국인들이 체득한 '위험 요소 미리 감지하기'의 한 단면이다. 그래서 왕조의 통치에 참여했던 중국 역대 문인과 관료들은 늘 걱정과 근심으로 지새우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인들 스스로는 이를 '우환의식(憂患意識)'으로 적는다. 가장 대표적 성어가 거안사위(居安思危)다. '평상시에도 위기를 생각하라'는 주문이다.

우한(武漢)에서 번진 코로나19로 많은 국가가 중국에 등을 돌린다. 바이러스로 세계화 흐름도 주춤해지면서 그에 편승해 호황을 누렸던 중국의 상황은 더 나빠질 듯하다. 이에 따라 중국 공산당은 최근 취업, 민생, 자국 기업 보호, 식량 및 자원, 산업 공급망 안전, 기층 조직의 원활한 운용 등 ‘여섯 가지 확보[六保]’를 새 틀로 제시했다. 경제 환경의 안정과 유지에만 주력했던 느슨한 흐름을 위기에 본격 대응키 위한 적극적 방어 전략으로 크게 전환했다는 느낌이다. ‘우환의식’의 전통에서 우러나는 중국식 위기 감지와 대응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유방

 

항우

 

     

원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30/20200430019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