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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77] 담을 넘는 중국인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2.21. 03:12

담을 넘는 행위가 ‘담치기’다. 개도 궁지에 몰리면 그렇게 한다. 중국인이 잘 쓰는 성어 구급도장(狗急跳墻)의 경우다. 참선(參禪)에 빠져 있다가 입맛을 자극하는 향긋한 냄새를 참다못해 담을 넘었던 사람도 있다. 중국 탕() 요리의 정수, 불도장(佛跳墻)의 유래를 설명하는 얘기다. 우리 식도락가들에게도 꽤 유명한 음식이다. 여기서 ‘도장(跳墻)’이 담을 넘는 행위다. 일반적 한자 표현으로는 월장(越墻)이다. 유장(逾墻)으로 쓸 때도 적잖다.

중국 문학사에 담을 애처롭게 넘나든 사람의 이야기가 하나 있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작품이다. 그가 전란의 와중인 어느 날 저녁 무렵 석호(石壕)라는 마을에 들렀을 때다. 두보는 한밤중 호통과 소란에 놀란다. 전쟁터에 보낼 사람을 잡으러 온 관리의 사나운 외침, 그를 피해 담을 넘어 달아나는 늙은이[老翁逾墻走]. 이어 늙은이의 할멈이 나와 "세 아들 다 끌려가 둘 죽고 하나 남았다"며 애절하게 울부짖는다. 두보는 마을에서 하루를 묵었다. "남편 대신 전쟁터에 가서 아침밥 짓겠다"는 할멈의 호소와 밤새 이어진 흐느낌도 들었다. 할멈은 관리를 따라 전쟁터에 갔다. 두보는 이튿날 집에 돌아온 늙은이와 헤어져 길을 나선다. 이야기는 그로써 일단락을 맺지만 중국인들은 그렇게 담을 넘어야 할 때가 많았다.

요즘 중국인의 담치기는 ‘번장(翻墻)’으로 적는다. 집권 공산당이 공을 들여 구축한 인터넷 감시와 통제의 담, Great Firewall(萬里防火墻·만리방화장) 넘어서기다. 중국에 불리한 외부 소식과 내부 정보가 드나드는 경로를 차단하기 위한 담이다. 코로나 19가 번지면서 이 담을 넘어서려는 사람도 부쩍 많아진 듯하다. 담을 쌓고 살다가도 때로는 그 담을 넘어서야 하는 일이 중국 땅 사람들의 숙명인가 보다.

원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20/20200220040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