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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2] 통치와 복종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6.05. 03:12

충신(忠臣)이나 효자,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세웠던 붉은 문이 있다. 우리는 보통 정문(旌門)으로 적지만 홍살문, 정려문, 홍문으로도 부른다. 왕조가 지향하는 가치에 가장 충실한 이를 표창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따라 배우도록 하는 기능이다.

그 원류는 역시 중국이다. 한()나라 때는 궐()이라는 명칭이었다가 유교의 통치 이념이 최고조로 발달했던 명()과 청()에 들어서는 패방(牌坊) 또는 패루(牌樓)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둘은 거의 같지만 지붕 양식이 없으면 패방, 있으면 패루다.

명과 청나라 왕조의 수도였던 베이징(北京)에는 그런 패방과 패루가 즐비하다. 왕조의 통치 이념에 가장 충실했던 황도(皇都)였기에 그렇다. 나중에는 유명 사찰이나 사적지 등을 기념하는 표지물 기능도 더해졌다. 그러나 민간에 세워진 패방과 패루가 골간이다.

대개는 과거 급제자, 충신이나 효자 또는 열녀의 행적이 있을 경우 그 가문이나 지역 유지 등이 과시용으로 앞다퉈 화려한 패방과 패루를 지었다. 왕조가 내세우는 통치 이념에 "우리가 가장 충실한 사람"이라고 호응하는 꼴이다.

특히 중국 남부 지역으로 이동해 정착한 명문(名門) 가족, 과거 급제자를 많이 배출한 집안 또는 지역에 숱하게 들어섰다. 그 안에 담긴 가치 지향은 충()과 효(), 정절(貞節) 등이다. 왕조는 이로써 '통치'를 벌이고 민간은 그로써 '복종'을 다짐하는 모습이다.

현대 중국을 이끌고 있는 공산당은 그로부터 계속 멀어져야 정상이다. 봉건적 왕조의 질서와 가치체계를 부정하고 일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홍콩 사태를 보면 그 반대다. 어느덧 인권과 민주의 가치에 익숙해진 홍콩에 보안법이라는 새 ‘패방’과 ‘패루’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조의 전통인 ‘통치’와 ‘복종’ 구도로 회귀하려는 중국의 행보에 홍콩 및 국제사회의 저항이 만만찮다.

원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4/20200604047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