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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3] 길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6.12. 03:12

남송(南宋)의 유명 시인 육유(陸游)가 길을 묘사한 시구는 퍽 유명하다. 산과 물이 계속 겹쳐지는 경우를 그렸다. “산중수복의무로(山重水複疑無路)”다. 산과 물[山水]이 줄곧 이어져[重複] 더 이상 길이 없어 보인다는 뜻이다. 앞부분은 달리 ‘산궁수진(山窮水盡)’으로 적기도 한다. 산길이나 물길이 다 막힌 상황이다. 모두 더 이상 나아가기 힘든 상태, 궁지에 몰린 경우다. 다니기 힘든 길인 험로(險路)에 갇힌 사람의 형편이다.

길에 관한 중국인의 심사는 복잡하다. 우선 다니기 쉬운 길에 집착한다. 평평(平平), 평로(平路), 평탄(平坦), 평전(平展), 탄탄(坦坦), 대도(大道), 대로(大路) 같은 단어가 그 맥락이다. 좋은 길에 관한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다. 어려운 길을 피하려는 심리도 강하다. 주로 산길이 그 대상이다. 바위 등이 많아 다니기 힘든 길은 기구(崎嶇)다. 험준(險峻)도 마찬가지다. 험산준령(險山峻嶺)도 발길을 막는다. 낭떠러지인 현애(懸崖)에서는 한숨부터 나온다. 절벽(絶壁) 앞에 서도 그렇다. 옴짝달싹하기도 힘든 좁고 위험한 길은 애로(隘路)다. 군사(軍事)에서는 가장 피하는 길이다. 깊은 골짜기에 들어서면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한다. 진퇴유곡(進退維谷), 진퇴양난(進退兩難)이 그 성어다.

중국이 안팎으로 시련이다. 코로나19의 발생과 확산이라는 과정을 두고 벌어질지 모를 책임 문제에 활력을 잃은 경제 사정, 미국과 전면적 마찰, 홍콩 사태 등 악재의 연속이다. 몸은 첩첩산중(疊疊山中)인데 어느덧 서산에 해가 지는 형국인지 모른다. 산과 물에 발길이 막힌 시인 육유의 눈에 문득 들어온 정경이 있다. “버드나무 그늘 아래 핀 꽃, 그리고 마을 하나(柳暗花明又一村).” 궁색한 지경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출로(出路)를 의미한다. 어려운 상황에 빠진 중국이 어떻게 새 길을 찾을지 주목거리다.

원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1/20200611050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