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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4] ‘짐(朕)’이 부른 외로움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6.19. 03:14

텔레비전 사극 등에서 왕조의 최고 권력자가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이 있다. 짐()이다. 이 글자의 유래를 찾다 보면 조짐(兆朕)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본래는 어떤 ‘틈새’ 등을 가리키는 글자였기 때문에 ‘조짐’이라는 말로 발전했을 듯하다. 처음 쓰임은 그랬지만 이 글자는 옛 중국에서 대개 1인칭 대명사, ‘우리’라는 뜻의 호칭으로 잘 쓰이다가 중국 판도를 최초 통일로 이끈 진시황(秦始皇) 때 이르러 제왕이 스스로를 칭하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고대 동양의 군왕을 모시는 일은 아주 두려웠다. 반군여호(伴君如虎)라는 성어가 나온 이유다. 임금 모시기가 호랑이 대하듯 어렵다는 얘기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아울러 제왕은 구중궁궐(九重宮闕)의 깊은 곳에 몸을 사리고 있어 외롭기 마련이다. 그래서 군왕 스스로는 자신을 고가(孤家)라고도 부른다. '외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더 나아가 임금은 자신을 '고()'라고도 했다. 다 마찬가지 맥락이다. 진시황 이전의 춘추전국(春秋戰國) 때에 일찌감치 유행한 호칭이다.

과인(寡人)이라는 말도 있다. 과덕지인(寡德之人)의 준말이다. 스스로 "덕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겸칭이다. '고가'와 '과인'을 이어 쓰는 경우도 많다. 달리는 여일인(予一人)을 쓰기도 한다. '나 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다른 이가 황제를 부르는 호칭은 즐비하다. 천자(天子), 황상(皇上), 성상(聖上), 폐하(陛下), 일존(一尊) 등이다. 영원한 삶을 누리라는 뜻에서 만세(萬歲)로도 부른다. 전각 위에 올라선 이 발아래에 모두가 조아리는 광경이 느껴진다.

세계 최강을 꿈꾸면서 중국이 스스로를 ‘짐’으로 자리매김하려는 공격적 대외 확장 정책을 선보인 지 오래다. 그러나 마주친 현실은 국제사회의 외면과 견제다. 무엇이 그 원인인지 중국의 깊은 성찰이 필요한 때가 온 듯싶다.

원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9/20200619000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