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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6] 동류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7.03. 03:12

북송(北宋·960~1127) 때의 문인 소식(蘇軾)이 삼국(三國·220~280) 시절의 적벽(赤壁)을 회고한 문구가 있다. 시작이 이렇다. “큰 강이 동쪽으로 흘러, 물결이 천고의 영웅을 다 휩쓸고 지나갔다(大江東去浪淘盡千古風流人物).”

중국의 대부분 하천은 동쪽으로 흐른다.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지세(地勢) 때문이다. 이른바 서고동저(西高東低)의 지형이다. 가장 서쪽에는 매우 높은 고원, 다음 단계는 산지(山地)가 이어지다가 동쪽으로 진입하면서 드넓은 평원(平原)을 보인다.

세 단계의 사다리꼴 지형이 중국 땅의 특성이다. 따라서 물은 동류(東流)하기 마련이다. 가장 대표적인 남쪽의 장강(長江)과 북쪽의 황하(黃河)를 비롯해 대개의 하천 흐름이 그렇다. 따라서 '동류'라는 단어에는 중국인의 각별한 심사(心思)가 맺힌다.

"동쪽 물 흐름에 떠나보내다"라는 의미의 '부동류(付東流)' '부저동류(付諸東流)'라는 성어가 대표적이다. 시간과 세월, 덧없는 인생, 성공과 좌절, 영광과 오욕(汚辱) 등이 어쩔 수 없는 큰 흐름에 실려 사라짐을 체념하며 받아들인다. 잃어 없어지는 망실(亡失), 잊어 없애는 망실(忘失)의 정서다.

무수한 전쟁과 셀 수 없이 많았던 재난(災難) 등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중국인의 마음 한구석 풍경이다. 나라 잃은 임금 남당(南唐) 이욱(李煜)이 "얼마나 슬픈지 아느냐"고 자문한 뒤 "마치 온 강의 봄물이 동으로 흘러 지나는 듯(恰似一江春水向東流)"이라 적은 글귀는 강물 흐름의 표현 중에는 압권(壓卷)에 해당한다.

중국 하천 흐름이 요즘 문제다. 너무 많이 내린 비 때문에 강물이 넘쳐 남부 중국 곳곳이 어지럽게 횡류(橫流)하는 물로 난리다. 동쪽으로 계속 흘러 바다로 빠져나가야 할 물이 사람 사는 곳을 삼키니 평범한 중국인들의 눈물과 한숨, 고단함만 나날이 깊어진다.

원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02/20200702048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