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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7] 관문(關門)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7.10. 03:14

“그대에게 권하노니 술 한 잔 더 드시게, 서쪽으로 양관을 나가면 아는 이 없으리니(勸君更進一杯酒西出陽關無故人)”라는 명구가 있다. 당나라 문인 왕유(王維·701~761)의 작품이다. 먼 곳으로 떠나는 지인에게 술 한 잔 권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구 가운데에서는 절창(絶唱)으로 꼽힌다.

여기 나오는 양관(陽關)은 지금 중국 둔황(敦煌)에 있던 당나라의 서남쪽 경계다. 그 북쪽에 있던 옥문관(玉門關)과 함께 서역(西域)을 향해 나갔던 마지막 국경 관문(關門)이라 아주 유명하다. 이별의 정서를 다루는 문학작품에 곧잘 등장한다.

중국에는 관문이 참 많다. 유비(劉備)가 죽은 뒤 북벌에 나서는 제갈량(諸葛亮)이 자주 넘었던 검문관(劍門關), 북방 유목민의 침입 루트에 있던 안문관(雁門關), 만리장성의 동서쪽 끝인 산해관(山海關)과 가욕관(嘉峪關) 등이 잘 알려진 관문이다.

'관()'은 중요한 경계에 들어서는 요새(要塞)다. 보통은 전략적인 요충이나 변경(邊境) 길목에 짓는다. 사람과 물자의 출입을 통제하는 곳이다. 본래 글자꼴은 문에 건 빗장을 줄로 잔뜩 옭아맨 모습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글자의 본래 뜻은 '닫다' '잠그다'다. 이어 중요한 곳에 들어서는 요새 등 맥락에서 사물의 가장 긴요한 부분인 관건(關鍵)이나 관절(關節), 그로부터 다시 뭔가 이어진다는 관계(關係), '마음에 담아두다'라는 관심(關心) 등 단어도 파생했다.

중국이 혹독한 통제와 체벌 위주 보안법을 제정하고 실행하면서 ‘홍콩’이라는 큰 관문 하나를 닫았다. 이어 경제의 ‘내적(內的) 순환(循環)’까지 강조하고 나서면서 지금까지의 개혁·개방 기조를 크게 바꾸고 있다. 문호를 아예 닫는 폐관(閉關)과 쇄국(鎖國)까지는 아니라 해도 외부와 중국을 잇는 길목들이 사람과 물자 모두 지나가기 어려운 난관(難關)으로 변하는 분위기는 아주 역력하다.

원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09/20200709043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