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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80] 중국인의 門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3.13. 03:12

816년 가을. 정쟁에 밀려 장시(江西)의 외딴 지역으로 좌천당한 문인 백거이(白居易)는 ‘비파행(琵琶行)’이라는 유명한 시를 쓴다. 퇴기(退妓)로 쓸쓸한 삶을 살던 여인을 만나 비파 연주를 들으면서다. 616자()의 작품에는 멋진 시구가 넘친다. 나이 든 기생이 제 신세를 한탄하며 “사람 찾지 않아 문 앞이 쓸쓸해졌다(門前冷落車馬稀)”고 한 표현도 그 하나다. 그때부터 문전냉락(門前冷落)은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성어로 발전했다.

중국인의 '문'은 조금 특별하다. 권세(權勢) 유무(有無), 출세(出世) 여부(與否)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로 곧잘 쓰인다. 우선 성어 문전성시(門前成市)가 그렇다. 찾는 사람이 아주 많아 문 앞이 장터처럼 소란하다는 뜻이다. 거수마룡(車水馬龍)도 익숙하다. 사람들의 수레와 말이 문 앞에 물처럼 이어지고, 용처럼 길게 늘어선다는 얘기다. 시쳇말로 '잘나가는 사람'의 집 앞 풍경이다. 그 반대 경우가 백거이 시로써 생겨난 성어다. 문정냉락(門庭冷落)으로도 쓴다. 오는 사람이 전혀 없어 문 앞에 그물을 펼쳐 참새를 잡을 수 있다는 과장 섞인 표현도 등장한다. 문가라작(門可羅雀)이다.

잘나가는 사람에게 몰리는 뜨거운 시선, 그러지 못하는 사람에게 꽂히는 냉담한 눈길이 문을 두고 고스란히 펼쳐진다. 이른바 염량세태(炎凉世態)가 빚어내는 모습이다. 그러나 달리 보자면 사람들의 일반적 정서와 변치 않는 세상 흐름이기도 하다. 그 맥락에서 이를 '인정세고(人情世故)'라고 적는다.

중국 우한(武漢)에서 번진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어 지구촌이 난리다. 앞으로 중국 문전은 매우 쓸쓸해질 듯하다. 병을 키워 번지도록 만든 사실에 사과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중국 당국의 태도 때문이다. 그런 성품과 마음을 지닌 주인의 집은 손님 발길이 자연스레 줄거나 아예 끊기는 법이다.

백거이

 

비파행

 

원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3/20200313000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