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18.12.25 03:14
온난화로 凍土層 메탄 방출 우려… 대형 초식동물 도입해 解凍 방지
발굽으로 눈 다져 지표 온도 낮춰 草地 확대로 햇빛 반사도 늘어나
인터넷 모금해 들소·야크 들여와 DNA 융합해 매머드 복원까지 추진
크리스마스나 새해 첫날은 밖으로 나가기보다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경우가 많다. TV는 이때를 겨냥해 속편(續篇)이 많기로 유명한 영화들을 단골로 편성한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도 그중 하나다. 하도 자주 보다 보니 "도대체 그 많은 공룡은 다 어디 갔을까"라고 농담을 할 정도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영화를 공상으로만 보지 않았다.
지난 12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국지구물리학회(AGU)에서는 쥬라기 공원을 연상시키는 '플라이스토세(世) 공원'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플라이스토세는 258만년 전부터 1만년 전까지의 지질시대로, 이를 마지막으로 빙하기와 구석기시대가 끝났다. 러시아의 지구물리학자인 세르게이 지모프와 아들 니키타 지모프 부자(父子)는 1996년부터 이미 사라진 플라이스토세를 시베리아에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 과학자들의 시도는 영화 쥬라기 공원에 나오는 과학자들만큼이나 엉뚱해 보인다. 하지만 영화와 현실은 목적부터 다르다. 영화에서는 공룡이 사는 공원을 만들어 엄청난 돈을 벌려고 했지만, 러시아 과학자들은 플라이스토세 공원으로 시베리아 영구 동토층(凍土層)에 숨어 있는 괴물, 바로 메탄이 깨어나는 것을 막으려 한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는 배출량이 적지만 지구온난화 유발 효과는 25배나 강하다. 러시아 과학자들은 지난 2006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시베리아 동토층이 녹으면 땅속에 갇힌 온실가스 5000억t이 방출돼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을 0.3도까지 올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행히 니키타 지모프 플라이스토세 공원 소장은 이번 학회에서 "플라이스토세 공원이 동토층을 유지해 지구온난화의 가속화를 막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공원에서 채취한 토양과 공원 밖 토양의 탄소 함유량을 비교했다. 분석 결과 지난 20여 년 동안 초식동물이 풀을 뜯은 공원 토양이 공원 바깥 토양보다 탄소 농도가 더 높게 나왔다. 플라이스토세 공원이 동토층의 메탄 보유 능력을 다른 곳보다 더 잘 유지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초식동물이 늘면서 초지(草地)가 확대되고, 이는 대기 중의 탄소를 더 많이 흡수하는 연쇄 효과도 가져왔다고 덧붙였다. 지모프 부자가 그리는 시나리오는 이렇다. 먼저 대형 초식동물들이 겨울에 시베리아 벌판에 쌓인 눈을 다지는 것이다. 시베리아의 눈은 그 아래 동토층을 한기(寒氣)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지구온난화와 결합해 동토층의 해동(解凍)을 가속화시킨다. 반면 초식동물이 살면 풀을 찾느라 눈을 파헤치고 다져 그런 보온 효과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플라이스토세 공원에서 초식동물이 풀을 뜯은 곳은 눈이 사라져 다른 곳보다 지표 온도가 2도 더 낮았다고 한다. 반대로 여름에는 햇빛을 반사해 지표 온도가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대형 초식동물이 살면 숲이 사라지고 초원이 확대된다. 숲은 초원보다 더 어두워 햇빛을 더 많이 흡수한다. 그만큼 지표 온도가 올라간다. 노르웨이에서도 같은 이유로 순록을 이용해 숲의 확대를 막는 실험을 하고 있다.
플라이스토세 공원은 현재 시베리아에 16㎢ 면적으로 조성돼 있다. 겉으로 보면 울타리로 둘러싼 버려진 들판처럼 보이지만 들소와 야생마·사향소·순록 같은 대형 초식동물들이 이주해 살고 있다. 연구진은 미국에 플라이스토세공원재단을 만들고 인터넷에서 운영 경비를 모금하고 있다. 올해도 750명의 독지가로부터 10만5000달러를 모아 히말라야에 사는 야크 6마리와 알래스카 들소 12마리를 들여왔다. 과학자들은 1㎢당 대형 초식동물이 20마리는 있어야 빙하기의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자금 부족으로 현재 100마리 정도만 이곳에 살고 있다.
멸종한 초식동물도 공원의 도입 목록에 들어 있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의 조지 처치 교수는 빙하기에 살던 매머드를 복원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미 시베리아의 얼음 속에 보존된 매머드 사체에서 DNA가 담긴 세포도 추출했다. 처치 교수는 매머드의 유전자를 오늘날 코끼리에 이식해 10년 내 추위에 잘 견디는 시베리아 맞춤형 코끼리를
탄생시킬 계획이다. 과학자들은 구석기시대 매머드나 들소의 멸종은 기후변화보다 당시 인류의 남획(濫獲)이 더 큰 원인이었다고 본다. 우리 조상들은 매머드와 들소 떼를 절벽으로 몰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생존에 필요한 수보다 더 많이 학살했다고 한다. 플라이스토세 구석기 공원은 매머드의 멸종에 이어 온난화까지 유발한 인류가 늦게나마 지구에 내민 반성문이 아닐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24/20181224021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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