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알퍼 칼럼니스트
입력 2018.05.15 03:13
삼킬 때 콧속까지 뚫리는 느낌… 세상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어
英國도 비리고 짠 멸치 소스 토스트에 발라 먹는 걸 즐겨
음식에 대한 好不好는 국경 넘어 흥미로운 대화 끌어내
인간이 가진 오감 중 미각(味覺)은 논란의 여지가 제일 많은 감각이다. 그래서 가장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례로 잘 띄운 청국장이 지금 우리 눈앞에 보글보글 끓고 있다면 어떨까? 내가 아는 한국인의 절반은 엄청나게 반가워하며 먹어 치울 것이다. 반면 다른 절반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줄행랑을 칠 것이다. 청국장 냄새는 많은 이방인들에게 역겹게 느껴질 법하다. 하지만 내겐 그다지 혐오스럽지 않다. 나는 영국 사람이지만 어머니는 프랑스인이다. 이 때문에 집 밖에 보관해야 할 정도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치즈를 즐겨 먹는 프랑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만약 나처럼 음식의 강한 풍미(風味)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치즈일수록 더욱 맛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치즈에서는 깊은 풍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맹숭맹숭할 것이다. 내 고국인 영국의 음식들은 너무 오래 삶아 물컹하거나 밍밍한 맛으로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다. 하지만 의외로 한국의 과메기처럼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강한 맛의 음식들도 많다. 예를 들면 키퍼(kipper)라는 영국 음식은 한국의 비린 생선보다 더 고약한 냄새가 나고 다섯 배 이상은 짠맛의 훈제 청어이다. 놀라운 점은 영국 사람들이 그 음식을 이른 아침에 먹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빵이나 감자와 함께가 아니라 우유를 잔뜩 넣은 티를 곁들여 코를 찌르는 훈제 청어만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청국장, 치즈, 과메기, 키퍼(kipper)-훈제 청어
영국인들은 안초비, 즉 멸치와 매우 독특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국 사람들처럼 멸치를 말린 뒤 반찬이나 육수로 사용하는 대신 영국인들은 소금에 절인 후 소스로 만들어 사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몇 방울로도 수프나 스튜 등의 요리에 풍미를 더하는 우스터 소스다. 하지만 영국 사람들은 이 은은한 맛의 소스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듯하다. 그들은 비린 맛과 짠맛이 좀 더 강한 멸치 소스를 원했고, 그래서 구두약이나 초강력 헤어 왁스가 들어 있을 법한 깡통에 담겨진 '젠틀맨스 렐리시(Gentleman's Relish)'라는 스프레드(spread·빵에 발라 먹는 식품)가 탄생했다. 영국 신사들은 이 스프레드를 토스트에 잔뜩 발라 먹는다. 이 음식을 먹은 후 신사적인 냄새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영국의 국민 요리인 '피시 앤드 칩스'도 그렇다. 미국인들은 튀긴 감자와 생선에 달달한 토마토 케첩을 곁들인다. 반면 영국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모나리자에 콧수염을 그려 넣는 것처럼 불경스럽다고 생각한다. 영국 사람들은 피시 앤드 칩에는 싸구려 식초를 잔뜩 뿌려 먹는 것이 진리라고 여긴다. 참으로 고상한 취향 아닌가? 마마이트(Marmite)라는 이스트 추출물로 만든 찐득하고 새까만 스프레드도 빼놓을 수 없다. 영국 사람들은 굳은 엔진 오일처럼 보이는 이 스프레드를 빵에 마구 발라 먹는다. 마마이트 역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음식이다. 실제로 마마이트 회사는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마케팅 전략을 짠다. '당신은 마마이트를 사랑하거나 증오한다(You either love it or you hate it).' 이 문구는 마마이트의 공식 슬로건이다.
안초비, 우스터 소스, 젠틀맨스 렐리시, 피시 앤드 칩스, 마마이트(Marmite), 홍어
사실 영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히스로공항의 세관 직원들은 여행객들의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젠틀맨스 렐리시' 같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음식들을 압수하느라 언제나 승객들과 실랑이를 벌인다. 마찬가지로 내가 인천공항을 갈 때마다 고추장과 김치의 기내 반입 규정에 대해 설명하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국 세관 직원들을 목격한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는 흥미진진한 대화를 끌어내는 엄청난 힘을 가졌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물어볼 적마다 나는 홍어라고 대답한다. 첫째 이유는 홍어를 먹을 때의 감각 때문이다. 홍어를 삼킬 때 입부터 콧속까지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은 이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둘째 이유는 홍어를 좋아한다고 대
답하면 항상 한국 사람들은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짓기도 하고, 반대로 입이 귀에 걸린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도 말한다. "와! 다음에 꼭 같이 먹으러 가요."
만약 영국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들에게 마마이트와 우스터 소스를 좋아한다고 말하라. 아마도 한국에서 내가 겪은 것과 비슷한 흥미로운 반응을 겪게 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14/2018051402964.html
'일러스트=이철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Why] 학교 떠나겠다던 '미투'교수, 잠잠해지자 막후에서 여론戰 (0) | 2018.05.19 |
---|---|
[김성윤의 맛 세상] 밥, 主食에서 美食 되다 (0) | 2018.05.17 |
[Why] 한글학자 외솔, 정작 사투리 심해 해방을 '해뱅'이라 발음해 웃겨 (0) | 2018.05.12 |
[Why] 군대 대신 배 탄 청년들… 그곳은 바다 위의 지옥이었나 (0) | 2018.05.12 |
[김철중의 생로병사] 당신의 밤잠은 아침에 결정된다 (0) | 2018.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