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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김경준의 리더십 탐구] 군대 리더십, 21세기 디지털 시대에도 각광받는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입력 2018.05.01 03:12


당대 최고의 인재·기술 집약된 軍隊는 리더십과 조직의 모델
이순신·나폴레옹의 리더십은 오늘날에도 벤치마킹 대상
인품과 결단력, 도전 정신은 개인주의 시대에도 필요한 덕목


군대는 모순의 조직이다.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불사하고, 내가 살기 위해서 적(敵)을 죽여야 한다. 최전선에서 '돌격 앞으로!'라는 명령에 병사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적진으로 달린다. 승리를 위해 천금보다 소중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극한의 전장에서 발휘되는 리더십은 채찍과 당근이라는 통상적 동기 유발의 범주를 초월하는 경지이다. 역사적으로 군대는 체계적 조직의 원형(原型)이었다. 당대 최고의 인재와 기술로 무장한 군대는 민간 조직 발달의 모델이자 리더십의 원천이었다. 동서고금 역사에 기록된 이순신, 을지문덕, 카이사르, 한니발, 나폴레옹 등이 오늘날에도 벤치마킹 대상인 배경이다.

이순신, 을지문덕, 카이사르, 한니발, 나폴레옹


저명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리더십에 대한 최고의 저술은 2500년 전 그리스 장군 크세노폰의 '키로파에디아(Cyropaedia·키루스의 교육)'이며, 리더십 훈련을 위한 최적의 장소는 '미국의 군대'라고 밝혔다. 군사 리더십 전문가인 에드거 퍼이어는 미군 지휘관의 리더십을 30년 이상 연구하면서 1000여명의 장군을 인터뷰했다. 그는 세계 최강인 미군을 이끌어 가는 탁월한 리더는 인품(人品), 결단력, 도전 정신, 위임에서 구분된다고 결론지었다.

피터 드러커, 크세노폰 & '키포파에디아'


인품은 리더십의 출발점이다. 2차 세계대전 연합군 사령관으로 후일 미국 대통령을 지낸 아이젠하워 원수는 '인품은 리더십의 모든 것이다. 인품이란 정직함에 바탕을 둔 성실함이다'로 정의했다. 지휘관이 사심(私心)을 가지고 일신의 영달을 우선하면 병사들은 순식간에 오합지졸(烏合之卒)로 전락한다.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이 지휘하던 무적의 조선 수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원균의 참패가 이를 웅변한다.

아이젠하워, 원균




결단력은 리더십의 핵심이다. 삶과 죽음, 성공과 실패가 걸린 갈림길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입장은 외롭고 어렵다. 하지만 리더는 결정하고 책임진다. 2차 대전 미 육군참모총장이었던 마셜 장군은 단순한 방법으로 수많은 결정을 효과적으로 내렸다. 일례로 그는 모든 문서를 두 페이지 이하로 줄이도록 했다. 형식은 '사안의 서술, 장단점 비교, 대안'의 세 가지였다. 참모진은 논점을 정리하고 대안을 도출하는 훈련을 받았고 후일 다수가 최고위급 장성이 됐다.


도전 정신은 예스맨에 대한 거부이다. 결정은 리더가 내리지만 그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안목과 자질이다. 1947년 육군참모총장에 지명된 콜린스 장군은 헤이슬립 장군에게 전화를 걸어 참모차장직을 부탁했다. "왜 저를 찾으시죠? 지난 30년 동안 저와 한 번도 의견이 같은 적이 없었습니다"고 응답하자 콜린스는 대답했다. "바로 그래서 자네를 원하는 것일세."

마셜 장군                     콜린스 장군                헤이슬립 장군              맥아더 원수                     서경석 장군


위임(委任)은 자발성을 높여서 조직 역량을 극대화시킨다. 맥아더 원수는 "저는 많은 생각을 하는 것, 야단 좀 치는 것, 이따금 칭찬 좀 해 주는 것,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는 것 외에는 그다지 하는 일이 없습니다"고 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든 일들은 위임하지 않았다. 1930년대 육군참모총장 재직 당시 제대 군인들의 집단행동을 해산시키는 업무는 숱한 비난을 감수하며 직접 지휘권을 행사했다.

현장 지휘관의 리더십은 '동고동락(同苦同樂)'과 '솔선수범(率先垂範)'으로 압축된다. 1960년대 월남전에 맹호부대 중대장으로 참전해 충무무공훈장 등을 받고 후일 6군단장을 지낸 서경석 장군이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펴낸 '전투 감각'은 미 보병학교와 참모대학에서 교재로 선정됐다. 그는 회고했다. "전장에서 병사들이 존경하는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주고 멋있는 차림으로 찾아와 칭찬이나 늘어놓는 상급자가 아니다. 백 마디의 달변보다는 고통과 아픔을 참고 버티면서 죽음과 직면한 상황에서 솔선수범을 행동으로 보일 때 부하를 감동시키고 강한 전투력을 발휘하게 된다." 최신 무기도 필승의 투지(鬪志)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병사들의 투지는 지휘관의 리더십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고 승리라는 결과로서 증폭 된다. 소셜 미디어가 범람하고 인공지능(AI)이 실용화되는 21세기 디지털 시대에도 공동체의 에너지를 결집하고 분출시키는 리더십은 조직력의 핵심이다. 첨단 기술도 인간들과 만나서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주의가 확산되고 자발적 동기(動機)를 중요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비중이 커질수록 강한 군대에서 확립된 리더십의 교훈은 가치를 더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30/201804300278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