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은 기자
입력 2019.07.24 18:00 | 수정 2019.07.24 18:20
동료 여경에 '음해성 투서' 여경, 항소심도 징역 1년6개월
故 피진아 경사, 투서로 감찰 받다 극단적 선택
최근 피 경사 순직 인정...남편 "사과 한마디 없었다"
감찰 담당자는 불기소에 징계만…"민사소송할 것"
24일 오후 2시 25분 충북 청주지법 형사대법정 621호. 형사항소1부 이형걸 판사는 피고인인 전직 여경 윤모(38)씨에 대한 2심 선고문을 3분 동안 읽어내려갔다. 윤씨는 동료 경찰이었던 고(故) 피진아(당시 38세) 경사에 대해 세차례에 걸쳐 ‘음해성 투서(投書)’를 넣은 혐의(무고)로 기소됐다. 윤씨의 투서로 인해 충북지방경찰청은 감찰에 나섰고, 피 경사는 반복되는 조사를 받던 2017년 10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윤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으나, 지난 4월 윤씨와 검찰 모두 양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윤씨가 연두색 수의를 입고 피고인석에 섰다. 재판을 지켜보기 위해 찾은 피 경사의 남편 정모(40) 경위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피고인 윤씨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정씨는 "피고인이 총 3000만원을 법원에 공탁했지만, 따로 사과를 전해온 적이 없었다"며 "사과 한마디도 없이 어떤 얼굴로 재판에 임하는지 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2심 재판부는 이날 선고문을 통해 "피고인은 경찰공무원 신분으로 세 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동료에 대한 매우 악의적이고, 허위인 내용을 투서해 집요하게 범행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원심의 형량이 무겁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과 같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선고를 마치고 굳은 표정으로 피고인 윤씨는 법정을 떠났다. 그제서야 정씨는 허리를 의자에 기댔다. 재판을 마친 뒤 정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투서로 감찰 조사…"‘동료 줄소환’에 괴로워해"
피 경사는 2005년 1월 경찰제복을 입었다. 피 경사는 동료였던 정씨와 2007년 ‘경찰의 날’에 결혼했다. 슬하에 두 자녀를 둔 부부는 충북 충주경찰서에서 함께 근무했다. 피 경사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2014년 경사로 승진하고, 같은 달에 ‘이달의 자랑스러운 충주경찰’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익명 투서’가 비극의 씨앗이 됐다. 2017년 7월부터 9월까지 세차례에 걸쳐 충북경찰청과 충주경찰서에 ‘피 경사가 동료 경찰에게 갑질을 일삼는다’ ‘근태가 불량하다’ 등의 투서가 접수됐다. 충북지방경찰청이 감찰에 나섰고, 동료 경찰들은 투서에 적힌 내용을 부인했다. 피 경사에 대한 무리한 감찰 조사가 이어졌다. 감찰 중 피 경사를 미행하고, 촬영까지 한 것이다. 결국 피 경사는 두 번째 감찰조사를 받은 날인 2017년 10월 26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남편 정씨는 "아내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3년 지난 과거 일까지 다시 꺼내 죽이려 한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고 했다.
24일 고 피진아 경사의 남편 정모씨를 청주지법 앞에서 앞에서 만났다. /권오은 기자
고인의 죽음 이후 유족과 동료 경찰은 "감찰 과정에서 근거 없는 내용을 피 경사가 자백하도록 회유·압박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청은 사실 확인에 나섰다. 피 경사가 숨지고 2주 뒤 경찰청은 "부적절한 감찰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정씨는 "아내만 조사한 것이 아니라 동료 경찰들을 일일히 청으로 불렀다"며 "처음엔 누가 근거 없는 내용의 투서를 보냈을까 고민하던 아내가 동료에게 부담을 끼친다는 사실에 압박감을 느꼈다"고 했다.
◇감찰 당사자는 ‘불기소’…"민사소송 나설 것"
수사당국의 조사 끝에 투서를 보낸 것은 1년 동안 함께 근무한 적이 있던 윤씨로 밝혀졌다. 윤씨는 구속기소됐고, 올해 1월 경찰직무도 파면당했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실형이 선고됐다. 남편 정씨는 아내에게 더이상 해줄 것이 없다며 총 6차례의 공판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하지만 여전히 왜 그랬는지에 대해 피고인 윤씨의 말을 듣지 못했다. 정씨는 "승진과 관련해 경쟁상대인 아내가 실적이 뛰어나니까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 피고인은 이유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피 경사의 ‘순직’이 인정됐다. 인사혁신처 재해보상심의위원회는 지난 22일 "피 경사의 순직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순직은 공무원 재해보상법에 따라 공무원이 재직 중 공무로 사망하거나 재직 중 공무상 부상·질병으로 사망한 때 인정되며 유족연금과 보상금 지급 대상이 된다. 정씨는 "아내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며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도 떳떳할 수 있게 돼 다행이다"라고 했
다. 하지만 유족들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경찰은 피 경사를 감찰했던 이들에 대해 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사건을 넘겼지만, 검찰은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이들은 경찰 내부 징계로 정직과 감봉 등 징계를 받았다. 남편 정씨는 형사처벌은 어렵게 됐지만, 민사소송에 나설 계획이다. 정씨는 "아내를 위해 힘내서, 벌 받을 사람은 벌 받아야죠"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24/20190724022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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