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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조인원의 사진산책] 빛나라 인생이여, 인스타그램에서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부장대우

입력 2018.04.12 03:12

사진 공유 SNS 인스타그램, 즉석 사진기와 電報의 합성어
사용자 5억명 이르는 사진계 ''유명 패션 업체도 광고에 활용
앨범 사진 기억 없는 젊은 층에 아날로그 감성 불어넣어

얼마 전까지 해외 인스타그램(Instagram)에선 벌거벗은 엉덩이가 찍힌 뒷모습 사진들이 유행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cheeky exploits(뻔뻔한 업적)'를 검색하면 수많은 맨궁둥이 사진들이 뜬다. 별로 아름답지 않은 엉덩이도 수두룩하다. 대개 경치 좋은 곳이나 기념물, 여행지 등에서 맨볼기짝을 드러낸다. 찍히는 당사자는 즐거울지 몰라도 사진을 보면 민망하고 황당하다. 사진을 찍다가 말썽도 자주 일으킨다. 작년 12월 태국 방콕의 한 유명 사원에서 엉덩이 누드 셀카를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린 미국인 남성 커플은 경찰에게 붙잡혀 추방당했다.

러시아인 무라드 오스만(Murad Osmann)은 여자 친구와 전 세계를 다니며 찍은 독특한 포즈 사진들로 인스타그램에서 한동안 유명했다. 사진가의 한 손을 잡고 풍경 속으로 어서 가자는 여친의 뒷모습들이다. 사진처럼 예쁜 옷을 입고 멋진 어딘가로 가고 싶게 한다. 기자도 언젠가 휴가 때 한 곳에서 그렇게 찍어달라는 아내 요구에 영문도 모른 채 "한 손은 왜 붙잡고 자꾸 뒤를 찍으라고 해?"라고 항의한 적이 있다.

사진 공유 SNS 인스타그램이 어느덧 소셜미디어와 사진계에서 '갑(甲)'이 됐다. 인스타그램 사용자는 이미 5억 명이 넘는다. 개인 정보 유출과 정치적 편향, 시도 때도 없이 끼어드는 광고들과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까지 봐야 했던 페이스북에 지친 많은 사람이 인스타그램으로 옮겨갔다. 덜 심각하고, 남들이 먹고 입고 노는 모습들을 엿보면서도 이곳에선 타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다.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도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 소중하고 빛나 보인다고 한다. 즉석사진기를 뜻하는 인스턴트카메라(Instant Camera)와 전보(Telegram)의 합성어로 이름 붙인 인스타그램은 로고도 폴라로이드 모양이다. 정사각형 화면이 아날로그 느낌을 살린다. 사진을 찍고 올릴 때 여러 필터에서 선택하면 필름 느낌으로 바꿔준다.

무라드 오스만 사진


이런 인스타의 인기를 기업들이 가만히 놔둘 리 없다. 마크제이콥스 같은 패션 브랜드는 인스타그램 유저들이 자사 브랜드의 옷을 입고 직접 찍은 사진들을 메인 광고로 썼다. 스타벅스는 매장용 흰색 종이컵 위에 손님들이 직접 그린 컵 그림 사진을 인스타에 올려 뽑는 콘테스트를 했다.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들도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린다. 내셔널지오그래픽과 세븐 등에서 활동하는 사진가 에드 카시(Ed Kashi)나 AP통신 평양지국 사진기자였던 데이비드 구텐펠데르(David Guttenfelder)도 인스타를 자주 활용한다. 110만 명이 넘는 팔로어들이 구텐펠데르의 낯설면서도 친근한 남북한의 풍경과 일상들을 인스타그램에서 감상(鑑賞)한다. 국내에도 인스타그램을 주요 전시 공간으로 쓰는 사진가들이 있다. 무궁화소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박수연은 인스타그램에서 10만7000명의 팔로어를 둔 스타 사진가이다. 그는 가수 가인, 다비치, 백아현, 윤하유승우의 앨범 커버와 프로필 사진 등을 촬영했다. 독학으로 배운 사진 기법으로 친구들을 찍어 SNS에 올리자 문의가 쇄도했고 아이돌 스타와 가수들까지 촬영 의뢰가 들어왔다.

마크제이콥스

스타벅스

애드카시, 데이비드 구텐펠데르

박수연, 이옥토

가인, 다비치, 백아현, 유승우, 윤하

사진엔 머리에 꽃을 얹은 청순한 처녀들과 숲 속 요정 같은 소녀들이 카메라를 응시한다. 특이하게도 사진을 니콘 FM2와 야시카, 올림푸스 같은 아날로그 필름카메라로 찍는다. 빛에 따라 공기의 색까지 변하는 필름이 디지털보다 훨씬 매력적이라고 했다. 허름하고 못생긴 들판, 잡초나 낡은 집, 남들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자신이 사진으로 찍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고 했다. 사진가 이옥토도 페이스북 팔로어만 3만7000명이 넘었지만 사생활 노출이 너무 많아 인스타그램으로 옮겼다. 사진과 영상을 함께 작업한다. 최근 가구회사에서 의뢰받아 광고 영상도 찍었다. 이옥토가 찍은 선인장의 그림자, 강물에 비친 햇빛, 부서진 파도의 포말 같은 풍경들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안쓰러움과 쓸쓸함이 밀려온다. 작년 에 출판사에서 그에게 먼저 연락이 와서 사진책을 냈다. 벌써 3쇄를 찍을 정도로 인기다.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에겐 앨범 사진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만질 수 있고 구겨지며 땀에 의해 흐려지는 종이 사진을 본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의 인기도 아날로그 감성에서 출발했다. 디지털에 지친 많은 사람이 아날로그로 돌아오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11/20180411037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