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사 기자
입력 2018.03.10 03:02 | 수정 2018.03.10 08:09
어느 판사의 특별한 이혼
"법원이 제일 법을 안 지키는 곳입니다."
지난 2015년 서울가정법원의 조정을 통해 이혼한 이정현(가명)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이혼 조정은 재판 전에 부부가 가정법원의 조정에 따라 협의 이혼하는 절차다. 조정이 성립되면 재판 없이 이혼이 결정되고, 실패하면 이혼 소송 절차를 밟아야 한다. 조정이 진행되기 위해선 '이혼 조정 신청서'를 송달(送達)받는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 송달이 되지 않으면 다음 절차를 진행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씨는 신청서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느닷없이 이혼하라는 결정이 내려지고, 이를 기록한 결정본이 송달됐다. 법원에 의사 표현 한번 못 해보고 이혼이 결정된 것이다. 이씨의 배우자 A씨는 서울에 근무하는 판사였다. 이혼을 원했던 A씨가 이혼 조정을 신청했고, 이씨에게 송달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법원이 심리 한 번 하지 않고 서둘러 이혼을 결정한 것이다. 이들 부부 사이엔 두 명의 자녀가 있었다. 자녀가 있으면 숙려 기간을 주거나 적어도 심리를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법원은 이런 과정을 건너뛴 것이다. 초임 변호사 신분이던 이씨는 무력감을 느꼈다.
판사님의 특별한 이혼
재판 중엔 이상한 일이 계속됐다. 애초 법원은 이씨에게 이혼 조정 신청서를 송달했지만, 이씨가 집에 없는 탓에 전해지지 않았다. 이혼을 원하지 않았던 이씨는 일부러 집을 비우기도 했다. 이씨가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송달 시간이었다. 법원에서의 송달은 대부분 오전이나 오후에 이뤄진다. 그런데 이씨의 경우엔 몇 차례나 새벽에 송달이 시행됐다. 이례적인 일이다. 이런 특별 송달은 판사가 인용해야 가능한 것이다. 이 때문에 판사들끼리 편의를 봐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과 시간 중 송달은 우체국을 통해 이뤄지지만, 야간이나 휴일에는 법원 직원이 가야 한다. 특별 송달 신청은 기각되는 경우도 많다.
두 사람은 이혼하면서 아이들은 이씨가 키우고, A 판사는 양육비를 지급하기로 했다. 부모의 소득과 재산 상황, 자녀의 나이 등을 감안해 부부 각자가 부담해야 할 양육비가 결정되고 아이를 키우는 쪽에 이를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이혼 후 A 판사는 한 번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준 돈을 이씨가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문제는 법원 결정에 A 판사가 양육비를 이씨에게 얼마나 지급하라는 구체적 내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법원이 부부가 양육비 분담에 합의했다고 보고 이 부분을 따로 결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의 신청 등의 절차가 있었지만 법원이 판사인 A씨 편을 든다는 생각에 이씨는 아무런 조처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법원 측은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혼 조정에 반드시 심리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가정법원은 "실제로는 협의 이혼이지만 형식만 조정을 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런 경우 재산이나 양육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고 바로 이혼이 결정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러나 법원이 A씨에게 합의가 제대로 이뤄진 것인지 의사를 묻지 않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판사인 배우자의 말만 듣고 이혼을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혼 조정 신청서를 송달하지 않은 채 절차를 진행한 것에 대해선 "이례적인 경우"라면서도 "송달이 계속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A씨가 이혼한다는 내용의 신청서를 제출해 이를 받아들인 것"이라며 "문제가 있었다면 이씨가 이의 신청을 했어야 한다"고 했다.
법정에 서기 싫은 판사들
대부분이 공개되는 민·형사 재판과 달리 가사(家事) 재판이나 조정은 비공개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를 이용해 일부 판사들이 자신의 이혼 조정이나 소송을 원하는 대로 서둘러 진행하려 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씨와 비슷한 시기 이혼했던 한 전직 판사 역시 조정을 신청해 서둘러 마무리했다. 이 전직 판사는 수차례 자신의 이혼 조정을 맡은 판사에게 전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상당수 판사는 자기가 소송 당사자가 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사건을 빨리 종결시키려 한다"고 했다.
정부는 시대에 뒤떨어진 가사 소송 절차를 보완한다며 지난달 27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가사소송법 전면개정안을 의결하고, 이달 2일 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했다.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양육비를 부담해야 하는 쪽에서 30일 이상 양육비를 주지 않을 경우 법원이 감치(구치소나 유치장 등에 일정 기간 구금)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법 개정은 27년 만에 이뤄지는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
그러나 판사가 자신들이 내놓는 판결과 부합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이런 법 개정 역시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 판사는 자신은 양육비를 주지 않고 있지만, 과거 가사 재판을 담당하며 양육비 지급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씨는 A 판사에게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청구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9/20180309018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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