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입력 2018.02.07 03:03
간밤에 눈이 내렸다. 마당으로 나가니 햇살에 빛나는 흰 눈에 눈이 부시다. 뺨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다. 순백의 눈밭을 밟기가 아까워서 한참을 보고 있었다. 영하 15도의 한기가 제법 강하게 느껴진다. 집안으로 들어오려다 문득 마당 가장자리로 무언가 흔적이 보였다. 고양이 발자국이다. 발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걸 보니 눈이 그친 새벽녘 아무도 모르게 슬며시 다녀갔을 것이다. 집 옆에 있는 밭에서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와 반대편으로 걸어간 흔적이 역력하다. 한 줄로 단정하게 발자국을 남기며 슬며시 왔다가 홀연히 사라진 고양이를 생각하면서 자취를 좇아 눈길을 돌린다. 그런데 그 발자국은 마당 한쪽에 세워두었던 자동차 아래로 들어갔다가 다른 곳으로 나갔다. 한 줄로 남아 있는 마당의 발자국과는 달리 자동차 주변에는 고양이의 서성거림 혹은 머뭇거림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여러 개의 발자국이 나 있었다.
새삼 매서운 날씨가 가슴을 스쳤다. 저 고양이는 간밤의 매서운 추위를 어떻게 견뎠을까. 최근 한파가 이어지면서 우리 동네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는데, 그 추위를 어떻게 버티면서 살아온 걸까.
사람마다 형편이 다르지만 주거 시설이 좋아지면서 계절을 극복하는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험난한 환경을 벗어나 자신만의 따뜻한 공간으로 들어간다. 그런 현실에 익숙해지다 보니 나는 어느새 나와 가족의 평온함만을 추구하는 일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이웃의 추위나 어려움을 걱정할 줄도 모르고, 어려운 이웃 이야기도 무덤덤하게 듣거나 관용적 연민만을 보이는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내가 누리는 이 삶이 어찌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된 것이겠는가. 주변 사람들 덕분에 살아가면서 나는 어느새 나와 가족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양이를 생각하면서 마당 저편으로 사라져 간 고양이의 희미한 발자국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07/20180207001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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