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연 기자
입력 2017.09.02 03:02
원금 넘어서는 배당금 약속… 나중에 투자 받은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에 배당금
650명 피해… 1억 투자한 사람도
최근 경찰에 적발된 200억원대 '식용 귀뚜라미 사기 사건'을 계기로 식용 곤충 사업을 둘러싼 사기 주의보가 내려졌다.
올해 초 경기 부천 소사경찰서 한 수사관은 길거리에 붙어 있는 '원금 100% 보장, 고수익 귀뚜라미 사업' 전단 문구를 보고 유사 금융수신업을 의심해 수사에 들어갔다. 유사 수신은 금융 당국 허가를 받지 않은 업체가 원금 보장과 고수익을 약속하며 불특정 다수에게서 투자금을 받는 것이다. 경찰은 이후 수사를 벌여 "식용 귀뚜라미 양식 사업에 투자하면 원금을 넘어서는 배당금을 주겠다"고 속여 201억원을 챙긴 혐의로 경기 부천에 있는 A법인 최모(51) 대표를 지난 6월 구속했다. 경찰은 최씨 회사에서 일한 지사장 김모(58)씨 등 16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에게 속은 650여 명 중 상당수가 노인이나 주부였으며, 자신들이 사기 사건 피해자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원금을 보장해준다니 안심이 됐다" "나름대로 귀뚜라미 양식업을 조사해봤더니 뜨는 사업 같아 투자했다"고 말한 피해자들이 많았다. 이 사건이 알려진 후 각 경찰서에는 자신이 투자하고 있는 귀뚜라미 양식 사업이 사기가 아닌지 조사해 달라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최씨의 수법은 전형적인 유사 수신 업체 영업 패턴을 따랐다. 다만 그 미끼로 식용 귀뚜라미가 새로 등장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해 9월부터 약 10개월간 정기적으로 사업 설명회를 열어 "식용 귀뚜라미는 40~45일이면 성충이 돼 사육 기간도 짧고, 육류보다 단백질 함량이 2배 이상 높아 앞으로 인기를 끌 대체 식량"이라며 "한 구좌당 240만원을 투자하면 매주 20만원을 배당받아 3개월이면 원금을 회수할 수 있고 연간 212%까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꼬드겼다. 경찰은 이들이 나중에 투자받은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돌려막기'로 업체를 운영했다고 밝혔다. 배당금을 받은 일부 투자자는 최씨 등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많게는 1억원 가까이 투자한 이도 있었다.
최씨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대형 관광버스에 투자자 수십 명을 태워 '귀뚜라미 양식장 견학'까지 기획했다. 최씨는 강원 홍천에 있는 친지 땅을 빌려 비닐하우스 반 동을 짓고 귀뚜라미를 들여놓았다. 그러나 이 귀뚜라미는 실제 거래로 이어진 적이 없었으며, 양식장 역시 모델하우스처럼 임시로 꾸며놓은 것이었다. 양식장을 본 투자자들이 아는 사람들을 끌어모으면서 투자자 수가 급속도로 불어났다. 실제로 작년 초 식약처에서 쌍별귀뚜라미, 벼메뚜기, 누에번데기 등 곤충 7종을 식품 원료로 인정하면서 창업계에선 귀뚜라미 양식업이 각광받고 있다. 본지가 한 귀뚜라미 분양 업체에 문의했더니 "귀뚜라미는 다른 식용 곤충에 비해 손이 덜 가면서 번식력도 뛰어나다. 3만마리 정도 분양하는 데 3000만~5000만원 정도가 들고, 가맹비 1000만원을 내면 판로를 뚫어줄 수 있다"고 했다. 창업 전문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대기업 C사에서 귀뚜라미를 원료로 하는 상품을 개발 중이라, 미리 귀뚜라미 양식을 하면 떼돈 벌 수 있다"는 풍문이 돌고 있다. 이미 경기권에는 330~990㎡(약 100~300평) 규모의 귀뚜라미 양식장 여러 군데가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1년 265가구였던 곤충 사육 농가는 지난해 1267가구로 5년 새 5배 가까이 늘었다.
소사경찰서 한미호
지능팀장은 "귀뚜라미 양식장 자체가 사기성이 짙다기보다는 유행하는 창업 아이템에 맞춰 사기 수법이 진화하는 것"이라며 "한때는 가상 화폐나 고철 재활용 사업이 유사 수신업 미끼로 많이 쓰였다"고 했다. 그는 "미래형 식량이나 새로운 산업임을 강조하며 '원금 보장, 고수익'을 내세울 경우 반드시 의심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갈색거저리유충(밀웜) 누에번데기 백강잠누에 벼메뚜기
쌍별귀뚜라미 장수풍뎅이유충 흰점박이꽃무지유충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01/20170901021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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