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 주말뉴스부장
입력 2017.07.20 03:12
1980년대 번성했던 록음악, 힙합·댄스음악에 밀려 쇠퇴
청년들 "부모 세대 음악 싫다"
기존 질서 부정했던 록음악이 저항의 대상 된 건 아이러니
그들이 부모 될 때 부활할 것
1985년 할리우드 영화 '백 투더 퓨처'에서 30년 전인 1955년으로 날아간 주인공 마티는 고교 파티 무대에 올라 척 베리 노래 '자니 비 구드(Johnny B. Goode)'를 연주한다. 척 베리가 1958년 발표해 '기타 연주로 얼마나 부자가 될 수 있는지 증명한 최초의 노래'란 평을 받은 명곡이다. 일렉트릭 기타를 멘 마티가 솔로 연주에 몰입한 나머지 헤비메탈 속주(速奏)로 치닫자 춤추던 관객들은 귀를 막고 서서 그를 쳐다본다. 머쓱해진 주인공은 "이런 음악이 낯설겠군요…그래도 여러분 자녀들은 이런 걸 좋아할 거예요"라고 말한다. 당시만 해도 로큰롤은 '미래의 음악'이었다.
백 투더 퓨처 척 베리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마티가 예언한 것처럼 록 음악은 1960년대 꽃피우기 시작해 70년대에 만개했고 80년대에는 흑인 음악을 비롯해 심지어 클래식과도 이종 교배되며 번성했다. 그러나 힙합과 일렉트로닉 음악이 90년대 이후 각각 덩치를 키우더니 이제 그 둘이 합쳐진 음악 말고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올여름에도 곳곳에서 '록 페스티벌'이 열리겠지만 록 음악만 연주되는 록 페스티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나라 음악 페스티벌 주 고객인 20·30대들이 더 이상 록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록 음악의 쇠퇴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세계 최대 록 페스티벌인 영국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은 지난 2008년 힙합 뮤지션 제이지를 헤드라이너(가장 중요한 출연자)로 세웠다가 거센 비난을 받았으나 이후 보란 듯이 제이지의 아내이자 R&B 가수인 비욘세를 헤드라이너로 올렸다. 컴퓨터 장비로 악기 소리를 내는 일렉트로닉 밴드의 출연 빈도도 이전보다 훨씬 늘어났다.
제이지 비욘세 프로 툴스 오토튠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 유독 심하다. 한국의 모든 매체는 힙합이나 일렉트로닉 또는 그 둘을 조잡하게 비벼 만든 싸구려 댄스 음악만 틀어준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작곡가들은 자발적·비자발적 경험에서 얻은 직관적 영감을 오선지 위에 음표들로 그려넣었다. 음악 창작은 지극히 인문학적인 노동이었으며, 설사 그 결과물이 대중에게서 외면받는다 해도 영혼을 음악에 실어 토해내는 행위 자체가 예술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면서 한국의 재능 있는 작곡가들은 '프로 툴스(오디오 편집 프로그램)'와 '오토튠(음정 바로잡아주는 프로그램)' 앞에 앉아 어떻게 하면 잘 팔리는 노래를 조립할까 골몰하는 기술 노동자가 돼버렸다. 끌과 대패로 오동나무를 깎던 장인(匠人)이 사출기 앞에서 플라스틱 제품에 상표 붙이고 있는 꼴이다. 매체의 영향이 가장 크지만 결국 그 근원에는 록 음악을 듣지 않는 대중이 있다.
이런 실정이니 한국에서 록 음악을 하려면 밥을 굶거나 습기 찬 반지하에서 장마철을 보내야 한다. 미국과 유럽 페스티벌에서 호평받은 우리나라 한 록 밴드 멤버들은 카카오톡으로만 연락이 된다. 전화비를 낼 돈이 없기 때문이다. 한 대학 실용음악과 교수가 이들과 함께 작업하려고 "택시 타고 빨리 와 달라"고 한 적이 있다. 이들은 "택시비 낼 돈이 없다"고 했다. "택시비 내줄 테니 도착해서 연락하라"고 하자 "택시 내리는 곳에 와이파이가 없으면 카톡을 보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교수는 이들 도착 시각을 어림잡아 택시비 들고 학교 앞에 나가 있어야 했다.
팝부터 클래식까지 거의 모든 장르 음악을 듣지만 20세기를 음악의 제왕으로 군림한 록 음악의 매력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도발적인 기타에 이은 중독성 강한 리듬, 그리고 세상의 모든 우울(憂鬱)로부터 끌어올린 듯한 보컬…. 이것은 두 끼를 굶고 마주한 숯불구이를 기다리며 마시는 첫 잔의 술보다도 강렬하다. 이런 음악을 들으라고 권하는 심정은 꿈에서 천국에 다녀온 종교인이 길에서 타인의 소매를 붙잡는 것만큼이나 간절하다.
왜 청년들은 더 이상 록을 듣지 않을까. 캐나다 작가 데이비드 색스의 책 '아날로그의 반격'을 읽다가 이런 내용을 발견했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LP에 열광하는 이유를 찾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부모 세대의 물건들은 쿨하지 않으니까요. 마치 로큰롤처럼 말이죠. LP는 더 이상 부모 세대의 물건이 아니에요."
데이비드 색스, 아날로그의 반격
록 음악은 더 이상 쿨하지 않다. 그 이유는 오로지 부모 세대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부모 세대가 될 때
록 음악은 다시 쿨하게 될 것이다. 그때 어른들이 듣는 힙합과 일렉트로닉은 쿨하지 않을 테니까. 유행이란 결국 구(舊)질서에 대한 부정과 저항에서 출발한다. 그것을 구세대는 '복고(復古)'라고 말한다. 모든 질서와 규제에 대한 부정에서 출발한 록 음악이 저항의 대상이 된 것은 21세기 최대의 아이러니라고 할 만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19/2017071903832.html
'일러스트=이철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응백의 해산물식당 紀行] 봄 도다리쑥국 못지않은 여름 東海의 참가자미회 (0) | 2017.07.25 |
---|---|
[Why] 갑자기 욱해서 "사장 불러!"… 을의 숨은 얼굴 '갑질' (0) | 2017.07.22 |
[Why] 큰 돈 과감하게… '덕질' 오빠 직구족 늘었다는데 (0) | 2017.07.15 |
[Why] 폭염 난민, 학교 도서관·카페로…"쪄죽을 것 같아 집 나왔어요" (0) | 2017.07.15 |
[유현준의 도시이야기] 카페·노래방·편의점… 숨을 곳 찾아 헤매는 한국인 (0) | 2017.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