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러스트=이철원

[김성윤의 맛 세상] 홍삼 든 참치·아토피 개선 유산균… 올 추석 반려동물 선물세트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입력 2019.09.05 03:12


개·고양이 등 이젠 가족 일원… 당당하게 선물 받아
명절 선물, 배고팠던 시절엔 달걀·돼지고기 한 덩이
1960년대부터 상품화… 요즘엔 나한테 주는 선물도

참치 통조림은 대표적인 명절 선물이다. 추석을 맞아 한 백화점에 새로운 참치캔 선물세트가 등장했다. 참치살에 닭가슴살·게맛살이 추가돼 맛과 영양이 더 풍성한 데다, 항산화·면역기능 강화 효과가 있다는 홍삼 농축액까지 더했다. 또 다른 백화점에서 내놓은 건강 선물세트에는 유산균 제품이 포함됐다. 김치에서 추출한 식물성 유산균 '락토바실러스 플란타룸'이 1g당 50억 마리나 들어 있어서 알레르기나 아토피 피부염 개선 효과가 입증됐다고 한다.

반전은 이들 선물세트가 인간을 위한 게 아니라는 거다. 개·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위한 상품들이다. 올 추석에는 반려동물을 위한 추석 선물세트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이른바 '펫팸(pet+family)'이 늘었기 때문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인 만큼, 가족의 일원이 된 반려동물에게도 선물을 주고 싶어 하는 이들이 꽤 많다"고 했다. 반려동물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추석 선물을 통해 알 수 있다.

명절 선물은 시대를 반영해왔다. 6·25전쟁 직후 배고팠던 시절에는 먹을거리가 선물이었다. 친지나 이웃끼리 달걀 한 꾸러미키우던 닭, 돼지고기 한 덩이 등을 주고받으며 정(情)을 나누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서야 명절 선물이 상품화됐다. 백화점들은 신문에 추석 선물 광고를 내고 카탈로그를 찍어 배포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가장 인기 높은 선물은 설탕·인공조미료(MSG)·밀가루 등 '3백(白) 식품'이었다.


1970년대에는 경제 산업화가 진행되고 배고픔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먹거리 일색이던 명절 선물이 스타킹, 양산, 속옷, 치약, 비누 등으로 다변화한다. 식품 중에서는 인스턴트 커피 세트가 선풍적 인기를 끈다. 경제 성장기에 본격 진입한 1980년대에는 명절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가 완전히 정착한다. 백화점에서 주로 내놓은 고급 패키지 선물이 대세가 된다. 한우, 굴비, 전복 등 고급 식품이 선물로 등장했다. 1990년대에는 선물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백화점은 상류층을 노린 값비싼 고급 선물세트를, 대형 할인점은 실속 선물세트를 내놓았다. 한동안 금지됐던 상품권도 1994년부터 재발행되며 최고의 명절 선물로 등극한다. 2000년대 명절 선물의 키워드는 '웰빙'이었다. 알코올 도수 높은 위스키보다는 건강에 좋다는 와인, 친환경 과일, 홍삼·수삼 등 건강식품이 인기를 얻는다. 부모님을 위한 건강검진 예약권, 실버보험 선물도 등장했다. 웰빙과 함께 '여유' '여가'도 중시되면서 공연 관람권, 관광 상품까지 명절 선물로 등장했다.

반려동물용 선물 외에도 실속형·소포장 선물이 올 추석 두드러지는 선물 트렌드다. 지난해 9월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 이후 3만~5만원대 선물이 늘어난 반면 5만~10만원대 선물 판매는 줄었다. 백화점들은 5만원 이하 작은 선물세트 비중을 확대했고, 커피전문점·베이커리의 저렴한 선물세트 판매량이 상승세다. 혼자 추석을 쇠는 '혼추족'이 늘면서 자기 자신에게 주는 '셀프 선물'도 많이 팔린다. 수제 맥주, 고급 초콜릿 등 개인 취향이 명확하게 반영된 제품이 잘 팔린다. 1인 가구가 늘면서 가정간편식(HMR) 선물세트도 쏟아져 나온다. 한우는 여러 부위를 조금씩 소포장했다. 갈비·꼬리 같은 국·찜용 소고기 부위보다 꽃등심처럼 구이용 부위가 많아졌다. 젊은 세대에서 구이를 더 선호하는 취향이 반영됐다.

반려동물용 선물세트도 등장했으니, 미래의 추석에는 인공지능(AI) 로봇에게 줄 선물이 나오지 않을까. 영화 '그녀'의 주인공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일본 소니(Son y)의 강아지 로봇 '아이보'는 비싼 가격에도 추첨으로 구매자를 뽑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더 이상 수리가 불가능해진 아이보의 장례식을 치러주기까지 했다. 정서적 교감이 가능하다면 그 대상이 인간인지, 반려동물인지, 아니면 로봇인지 우리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AI 로봇에게 줄 명절 선물을 구입하는 미래가 그다지 황당한 상상 같지 않은 까닭이다.

그녀, 아이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04/20190904030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