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큐레이션팀 오현영
입력 : 2017.02.13 08:22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이야기
우리가 흔하게 썼던 말들, 본래 의미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는데…
진상의 사전적 의미
1. 진귀한 물품이나 지방의 토산물 따위를 임금이나 고관 따위에게 바침.
2. 겉보기에 허름하고 질이 나쁜 물건을 속되게 이르는 말.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보통, '진상'이라고 하면 직원에게 막 대하는 손님, 과도한 요구를 하면서 뻔뻔하게 구는 철면피, 꼴불견 등을 이르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진상'의 유력한 어원 중 하나는 바로 '왕이나 고위층에게 진귀한 물건이나 지방의 토산품을 바치는 것'이다. 이것이 요새 쓰이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진상'의 어원으로 꼽힌 이유는 진상이 가지는 폐단 때문이었다. 말로는 윗사람에 대한 존경심과 예우라고 하지만 먹고살기 빠듯한 서민들에게는 귀한 것을 마련하는 일 자체가 고역이었고, 구하기 힘든 것을 요구해 부담이 가중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진상이 지닌 폐단이 부각되면서 '허름하고 나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도 사용되었고, 현대에 와서 많이 쓰이는 '진상'은 그 부정적 의미를 차용하여 '못생기거나 못나고 꼴불견이라 할 수 있는 행위나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그 외에도 진상의 어원이 상놈 중의 상놈이라 하여 "진상"이라 하던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시치미의 사전적 의미
1. 매의 주인을 밝히기 위해 주소를 적어 매의 꽁지 속에다 매어 둔 네모꼴의 뿔.
2. 자기가 하고도 아니한 체,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태도.
/'매 나간다'(글 이승, 그림 고광삼, 사파리 출판사)
매사냥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널리 행해져 왔는데, '시치미'란 사냥 매의 꽁지에 다는 장식을 말한다. 매가 남의 집에 날아들면 그 집 주인은 시치미를 보고 매의 주인을 찾아 되돌려 준다. 하지만 제 발로 들어온 매이므로 가끔 시치미를 떼어버리고 제 매인 양하기도 했는데 '시치미를 뗀다'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지금에 와서 '시치미를 뗀다'는 말은 어떤 일을 해 놓고도 마치 안 한 척하는 행동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있다.
짐작의 사전적 의미
사정이나 형편 따위를 어림잡아 헤아림.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짐작'은 대개 어림으로 따져 헤아려 보는 것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는 술자리에서 나온 말로, 그 글자를 들여다보면 술을 따르는 행동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의 글자 짐(斟)은 술을 따르되 술잔을 가득 채우지 않는 일이고, 뒤의 글자 작(酌)은 반대로 술잔이 넘치도록 술을 따르는 동작이다. 가장 좋은 것은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도록 알맞게 따르는 것이다. 여기서 어떤 일을 할 때 되풀이해서 따져 보고 꼼꼼히 살펴서 가장 알맞은 것을 골라 결정하는 것을 두고 '짐작'이라고 하게 되었다. 또는, 짐(斟)을 '속이 보이지 않는 술병'으로 보아 술을 따를 때 도대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것을 나타내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트집의 사전적 의미
1. 공연히 조그만 흠을 들추어내어 불평을 하거나 말썽을 부림. 또는 그 불평이나 말썽.
2. 한 덩이가 되어야 할 물건이나 일이 벌어진 틈.
/조선 DB
조선 시대 선비들이 매우 소중하게 여겼던 '갓'에서 트집이란 말을 찾을 수 있다. 선비들에게 단순히 멋을 내는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던 갓은 만드는 것 또한 까다롭고 섬세한 공정을 요구했다. 그중에서도 갓의 양태(챙 부분)를 곡선으로 만드는 인두질을 '트집을 잡는다'고 한다. 또, 안성 지역이 갓 수선으로 유명했는데, 수선하는 사람들이 갓을 수선하면서 흠이 난 트집을 많이 잡아 수선비를 비싸게 타낸 데서 이 말이 나왔다고 한다.
또, 조상들이 옻나무에서 옻을 채취할 때 옻나무 껍질에 생채기를 내는 것을 트집이라 불렀다고 한다. 생채기를 내면 그곳에서 옻 진액이 나오고, 그 진액으로 옻칠의 원료를 만든다. 살아있는 나무에 트집을 내므로 '생트집'이라는 말도 여기서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색의 사전적 의미
1. 물건의 빛깔.
2. 어떤 기준으로 거기에 알맞은 사람이나 물건, 장소를 고르는 일.
3. 어떤 일의 까닭이나 형편.
영화<벤허>(1959)의 마차 경주 장면(왼쪽)과 진시황의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수레(오른쪽)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물색은 한자 뜻 그대로 풀이하면 '물건의 빛깔'이지만, 본래 옛날에 있었던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駟馬·사마)에서 나왔다. 수레를 모는 사람은 무엇보다 빛깔도 같고 힘도 비슷한 말 네 마리를 찾아야만 한다. 이때 빛깔이 같은 말을 '색마(色馬)'라 하고, 힘이 같은 말을 '물마(物馬)'라고 하였다. 따라서 물색이란 말은 힘도 비슷하고 빛깔도 같은 네 마리 말을 고르는 것에서 나왔고, 오늘날에는 '많은 것 중에서 꼭 알맞은 물건 또는 사람을 고른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 내용 참고
2008 조선왕실 진상품 조사연구 최종 보고서 /문화재청·한국문화재재단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정민 외(휴머니스트)
정민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08/20170208016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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