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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2030 플라자] 그래서 나는 헬스장에 간다

천현우 얼룩소(Alookso) 에디터
입력 2022.12.15 03:00

 

/일러스트=이철원

스스로 못났다고 느껴질 때, 나를 고통에 빠뜨려 잡념을 떨쳐낸다
힘드니까, 하기 싫으니까, 얻는 게 별로 없으니까 더 열심히 한다

근력 운동을 좋아한다. 내 SNS엔 헬스장에서 찍은 영상들이 수두룩하다. 한창 용접공으로 인터뷰 나갈 때 받았던 단골 질문 중 하나가 “공장 일하면서 운동하면 안 힘드세요?”였다. 안 힘들 리가. 다리 운동한 다음 날은 출근이 두려울 지경이었다. 공장 일에 딱히 도움 되지도 않았다. 남들 하나 들 거 두 개 들다가 힘자랑한다고 핀잔만 듣곤 했다. 면역력과도 큰 연관이 없었다. 잔병치레 안 하려면 아령 접었다 펼 시간에 술과 야식을 끊는 쪽이 훨씬 이익이다. 달리기나 수영이라면 모를까. 근력 운동은 빈말로라도 실용적이라 보긴 어렵다. 사실 나 역시 스스로 선택한 운동이 아니었다. 2018년 9월. 이집트 이주 노동자 미나에게 운동을 좋아한다고 말한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그날 곧바로 헬스장에 끌려갔고, 팔뚝이 내 허벅지만 한 미나의 친절한 코칭 끝에, 집 계단을 네발로 기어올라가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그렇게 몇 달간 주 3일씩 운동하다 보니 변화를 경험했다. 앞으로 굽어있던 어깨가 판판하게 펴졌고 밋밋하던 등과 팔뚝에 굴곡이 생겼다. 몸무게는 변하지 않았는데 태가 훨씬 예뻐졌다. 난생 처음 거울로 복근 구경까지 할 수 있었다. 몸 조각하는 재미에 빠져 식단 조절을 하기 시작했고 한땐 술까지 끊었다. 하지만 몸이 변하는 재미는 오래 못 간다. ‘몸 좋다’ 단계를 넘어가 감탄이 나올 수준, 보디빌딩 대회를 나갈 수준까지 몸을 완성하려면, 먹는 즐거움도 포기한 채 더 오랜 시간 더 잦은 빈도와 높은 강도로 운동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 ‘몸 좋다’ 단계에서 일반인의 ‘헬스’는 끝나기 마련이다.

몸 만드는 작업에 한계효용을 느낄 무렵 또 다른 목표를 찾았다. 내가 들 수 있는 무게를 극한까지 늘려보고 싶었다. 이때부터 근력 운동은 체감이란 주관에서 기록이라는 객관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열심히 일해도 월급은 늘 똑같고, 어려운 책 꾸역꾸역 읽는 시간도 아깝게 느껴질 때, 더 무거운 무게를 드는 데 성공하면 그 뿌듯함이 남달랐다. 그땐 어제보다 오늘의 내가 나아지고 있단 느낌을 운동에서 찾았다. 물론 사람은 개미가 아니므로 이마저 금방 한계가 찾아온다. 운동 5년 차, 이젠 고작 5㎏ 더 들기 위해서 몇 달 동안 운동해야 한다. 심지어 그리 운동해도 기록이 더 떨어질 때도 있다! 암만 열심히 땅을 일군들 홍수와 가뭄 때문에 농사를 죽 쑤는 농부의 심정이 이러할까.

그래서 최근엔 몸을 더 예쁘게 만들거나 무게 더 드는 목적으로 운동하지 않는다. 정신에 백신 주사를 놓으려고 헬스장으로 간다. 힘드니까, 하기 싫으니까, 얻는 게 별로 없으니까 더 열심히 한다. 감기 같은 부정한 감정을 억누르기 위한 면역력을 기르려 운동한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너무도 대단한 사람을 잔뜩 만난다. 하루에도 몇 번 내가 얼마나 초라한지 체감한다. 공장에선 겪지 않아도 됐을 열등감 때문에 괴롭다. 스스로 너무도 못났다고 느껴질 때, 나 자신을 일부러 고통에 빠뜨려서 나쁜 감정을 덜어낸다. 고행으로 잡념을 떨쳐내는 셈이다.

또한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세상은 운동하는 사람을 부지런하다고 인식한다. 이런 이미지를 노리고 운동한 건 결코 아니고, 실제로 성실한 사람조차 아니지만, 고운 시선을 받는 자체로 삶에 큰 도움이 된다. 세상은 게으른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타인한테 신뢰받을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 이미 헬스장에 갈 이유는 차고 넘친다!”라고, 오늘도 운동 가기 싫어하는 나를 설득해본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essay/2022/12/15/VCLIMBQO4RDSFJ44N3RQCWJFJ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