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영 기자
입력 2023.02.11 10:21
[승재현의 형사판] 형사법 전문가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와 함께하는 사건 되짚어 보기. 이번 주 독자들의 관심을 끈 사건에 관해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분석하고,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에 압수수색영장을 내주기 전 판사가 ‘대면 심문’을 통해 압수수색이 필요한 상황인지를 따질 수 있도록 하는 규칙 개정에 나섰습니다. 이를 두고 검찰과 법무부는 “수사정보가 샐 가능성이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는데요, 여기에 각종 은어를 사용하는 디지털 성범죄나 마약 범죄 등의 수사도 어려워질 거란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대법원의 형사소송규칙 개정안, 설명부터 해주세요.
현재 압수수색영장 발부는 문서로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법원에선 “압수수색영장 발부의 진실성을 명확히 하고 수사의 필요성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대면심리 방식을 도입했다”고 취지를 밝혔습니다.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할 때 ‘검색어’를 적을 것을 요구하고 있던데요, 이러면 범죄자를 놓칠 수 있다고요?
디지털 증거는 ‘선별 압수수색’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대상이 되는 컴퓨터만을 포렌식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때 해당 컴퓨터를 검색할 때 미리 영장에 적시된 ‘검색어’만 넣어서 포렌식해야 하는 겁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요. 디지털 성범죄자가 성착취물을 보관하는 파일명이 기상천외합니다. ‘ㄱㄷㅇ’(여고생의 비속어인 고등어의 초성) 혹은 ‘az844bv6987?,.ㄹ=24₩’ 등이 있었습니다. 이런 파일명을 수사기관이 사전에 알고 영장에 ‘검색어’로 적시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라면 상상이나 할 수 있으신가요?
또 파일 저장과정에서 일부러, 혹은 실수로 오‧탈자나 띄어쓰기 오류가 발생한 경우 오히려 정확한 검색어가 기재된 영장으로는 해당 파일을 검색하거나 압수할 수 없기도 합니다.
은어를 많이 사용하는 마약이나 비자금‧뇌물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자금을 ‘저수지’로, 뇌물을 받은 건 ‘슈킹’으로 표현하거나 회장을 ‘체어맨’으로 저장한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미리 영장에 해당 검색어를 기재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영장을 발부받아야 합니다. 그 사이 증거인멸 가능성은 높아지겠죠.
디지털 압수수색은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어 범죄와 관련성이 있는 검색어를 제시하라는 법원의 입장은 이해됩니다. 그러나 범죄자는 증거를 숨겨 놓은 파일명을 범죄와 전혀 관계없는 이름으로 저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청소년의 미래를 지운 성착취물 증거확보는 꼭 필요합니다.
원글: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3/02/11/J5DIEW7QDRFCPKDKPKO5MUSF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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