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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박현모의 실록 속으로] 현대 기업들도 고민하는 투명경영, 세종은 앞장서 실천했다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입력 2023.02.14 03:00


일러스트=이철원

어전 회의나 회계 자료 등은 공개하고, 史草 철저하게 기록·관리
가장 난제인 지배구조 해결 우선 주력하며 환경·사회문제 진척
아직은 낯선 ESG 개념, 우리에게 익숙한 세종 통해 습득할 수도

“매우 중요한데 가장 안 되고 있는 분야를 집중해서 진척시키기.” ESG 업무를 맡게 된 지인과 대화한 끝에 들려준 세종식 해법이다. ESG란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와 같은 비재무적 요소를 개선해야 하는 기업의 당면 과제다.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건강하게 살아갈 벼리[綱] 세우기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인간이 자연환경에 얼마나 취약한가를 깨달았고, ESG가 이미 기업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래도 관련 부서 사람을 제외한 다른 직원들은 별 관심이 없다는 게 그 지인의 고민이었다.

세종 시대 사람들은 환경과 사회적 공헌, 그리고 투명 경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궁금했다. 실록을 1년가량 탐독한 끝에 ‘ESG 관점에서 본 세종 리더십’이라는 논문을 겨우 쓸 수 있었다. 논문의 결론은 단순하고 분명하다. ① 환경·사회·투명경영이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세 가지를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성공할 수 있다. ② 통합적 접근이란, 매우 중요한데 가장 안 되고 있는 분야를 집중해서 진척시켜야 함을 뜻한다. ③ 세종은 지배 구조 투명화(G)라는, ESG 경영 중에서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분야를 솔선수범하여 실천했다. ④ 바로 그 점이 그 시대 사람들로 하여금 환경(E)을 경외하고 사회적 책임(S)을 다하게 했다는 게 논문 요지다.

세종이 실천한 대표적 지배 구조 투명화는 ‘어전회의 활성화’와 ‘실록 체제 수립’을 들 수 있다. 비유하자면 세종은 이사회를 다양한 이사진으로 구성해 실효성 있게 운영하되, 회의 내용과 회계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중에서 기록 시스템이 중요했다. 1434년 11월 5일 역사 기록 담당 부서인 춘추관은 왕명을 받아 세 가지 규정을 만들었다. 첫째, 기록 담당자를 대폭 확대했다. 어전회의에 배석하는 사관뿐 아니라 사헌부 등 법과 풍속을 담당한 관리는 물론, 승지와 사간원 관리 등도 기록을 담당하게 했다. 외교 업무를 위해 외국에 나간 사신들 역시 사관 일을 맡아야 했다. 궁중 안 여성들의 은밀한 이야기는 여사(女史)라고 하는 여성 사관들이 태종 때부터 기록하고 있었다.

둘째, 기록 내용을 충실하게 했다. 춘추관은 사관으로 하여금 어전의 대화나 공식 보고서 외에도, 어떤 인물의 능력이 뛰어난지 여부[賢否]와 일의 잘잘못[得失], 그리고 비밀스러운 내용 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평가해서 집으로 가져가서 간직하도록 했다. 이른바 가장사초(家藏史草)의 제도화이다. 사초와 관련해 두 가지 원칙이 더 만들어졌는데, 그 하나는 가장사초를 국가에서 거두는 시기이다. 사관 사후가 아니라 기록 대상이 된 국왕이 훙서한 다음에 사초를 수납하기로 해서 국왕이 사초를 왜곡할 가능성을 차단했다. 다른 한 원칙은 사초의 원본성을 훼손하거나 사초 내용을 누설한 자를 처벌하는 규정이다. 사초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문서로 간주되어, 몇 글자만 도려내거나 지운 자도 참형이라는 법정 최고형에 처했다.

셋째, 체계적 관리와 보관이다. 예문관 관리는 춘추관으로 출근해서 크고 작은 모든 관청에서 보고하는 문서를 점검하고, 연월 순서대로 편찬해서 바로 기록하게 했다. 기록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춘추관 당상관이 매월 한 차례씩 문서 관리를 점검하게 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실록을 포쇄(曝曬), 즉 햇볕과 바람에 습기를 말리게 하고, 안전한 사고(史庫)에 보관하게 했다.

ESG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의 전환’이다. 특히 기업의 오너를 포함한 경영진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제아무리 정부에서 ESG 공시를 의무화해도 소극적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다. 친환경과 사회적 공헌, 그리고 투명 경영에 가치를 두는 MZ세대의 눈높이에 맞추는 일도 중요한 숙제다. 이와 관련해 세계적 레스토랑 모모쿠푸(Momofuku)를 창업한 데이비드 장의 조언에 눈길이 간다. 그에 따르면 “이마를 탁 칠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비결은 사람들이 수없이 먹어온 익숙한 음식에 새로움을 선사하는 데” 있다. 사람들은 특히 어릴 적 추억이 있는 음식에 새로운 맛을 더하면 매우 큰 감동을 받는다는 게 그의 관찰이다.

세종이라는, 한국 사람이라면 수없이 먹어본 익숙한 음식에서 ESG라는 새로운 맛을 경험하게 하는 접근이 사람들의 생각 전환에 효과적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ESG 경영은 아직 가보지 않은 미답(未踏)의 길이다. 가보지 않은, 여러 갈래 길 앞에서 선택하고 실행해야 하는 경영자에게 논리 정연한 경영 이론보다는 성공 사례와 시행착오가 함께 들어 있는 역사가 더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않을까.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3/02/14/ZMM3CVTQVRCGFMSYEAC2KIQAR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