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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박성희의 커피하우스] 정치인들은 왜 총밖에 쏠 줄 모르는 걸까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입력 2023.02.24 03:00

일러스트=이철원

여당은 서로 죄를 만들어 안에서 총 쏘고 야당은 명백한 범죄 혐의 감싸며 방탄복 노릇
‘내부 총질’은 문 닫고 해야 국민에 대한 예의… 野는 어디 총 쏠 곳 없어 거리에 나와 총질인가
공감·경청할 줄 모르니 손쉬운 총 들고 난사한다

“사람들이 돌 대신 말을 던질 때 문명은 시작되었다”고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말했지만, 돌보다 치명적인 말이 넘치게 많은 세상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셰익스피어 시대에나 환유법에 속했지, 요즘은 그 자체로 사실에 가깝다. 칼로 입은 상처는 외과 수술과 항생제로 되돌릴 수 있지만, 댓글 때문에 자살하고 트위터로 정치하는 요즘, 펜은 진짜 칼보다 강하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것도 옛말, 요즘 권력은 글과 말에서 나온다. 그러다 보니 총보다 말이 더 녹슬고 타락하기 쉬운 물체가 되었다.

말이 문명의 시작이기는커녕 오히려 문명을 퇴보시킬 수 있다는 가설은 정치권을 보고 있노라면 심증을 넘어 확신으로 변한다. 저런 거짓말, 저런 막말, 저런 매너 없는 언쟁을 문명인이라면 할 수 없다. 자기 생각이 있는 사람은 거짓말을 일삼고, 자기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좀비의 언어를 쏟아놓는다. 도무지 말다운 말이 없으니 총알이라는 은유가 오히려 걸맞다. ‘내부 총질’이니 ‘방탄 국회’가 나온 게 우연이 아니다. 차이가 있다면 여당은 서로 죄를 만들어 씌우며 총을 쏘는 반면, 야당은 명백한 범죄 혐의도 감싸는 방탄복 노릇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여당은 부패로 망하고, 야당은 분열로 망한다”고 했는데, 요즘은 여당이 분열로 몸살을 앓고, 야당은 부패를 감싸느라 제정신이 아니다. 하기야 이들이 바로 직전에 여·야당이 바뀐 입장이니, 과히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전당대회를 앞둔 여당은 다시 ‘내부 총질’의 악령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같은 당에서 같은 지향점을 바라보는 사람들끼리 왜 저런 말들을 주고받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서로 깎아내리다 보면 모두 난쟁이가 되어 버린다. 누구의 장점은 누구의 약점이고, 누구의 위기는 누구의 기회라는, 영원한 제로섬 게임에서 발버둥 치며 ‘내부 총질’을 하면,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을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함께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정치인은 다른 사람의 갈등을 조정하는 사람이고, 그러기 위해 공감의 경청과 소통의 말을 도구로 써야 한다. 그런데 그런 도구를 쓸 줄 모르니 우선 손쉬운 총부터 집어 들고 난사한다. 말이 아닌 총을 사용하려다 보니 ‘탄핵의 강’이라는 실탄이 필요하고, ‘부동산 투기’ ‘민주당 DNA’라는 해묵은 탄알과, ‘윤핵관’이라는 대포알도 마구 투척한다. 심지어 ‘바이든’도 소환되었다. ‘울산의 이재명’이라는 프레임은 순식간에 당 전체를 이재명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발언이다.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되자 해당 후보가 “정치 생명을 걸라, 나도 걸겠다”고 사생결단의 자세로 맞선다. 정체성 논쟁에 대항하는 후보는 “우리 당에 뼈를 묻겠다”고 한다. 삶의 생동감이 넘쳐야 하는 정치가 생사가 엇갈리는 포연 가득한 전장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난사된 총알과 탄피는 고스란히 야당이 주워다가 긴요하게 재활용할 것이다.

격한 말과 거친 논리에 노출된 국민은 피곤하다. 자기들 사이의 의견도 조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재주로 사회의 갈등을 조정해낼 것인가. 무엇보다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는 자들이 죽기 살기로 싸우는 모습까지 지켜봐야 하는 국민은 무슨 죄인가. 그러니 국민에 대한 예의로, 내부 총질은 문 닫고 하라. 문 밖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싶은 건 윈-윈 하는 정책 논쟁이지, 선혈 낭자한 서부 활극이 아니다.

자녀 양육 헌법 제1조는 ‘아이들 앞에서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부모들 사이의 불화를 목격하며 자란 아이들은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갈 뿐 아니라, 거짓말을 하거나 도벽이 있는 아이로 클 수 있다고 한다. 니코틴이나 알코올 중독, 도박 중독에 빠질 수 있고, 나중에 당뇨, 심장병, 천식, 면역 저하 등의 만성질환에 시달리거나,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앓을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수면 장애, 학습 능력 저하, 결혼이나 연애에서의 관계성 실패, 더 나아가 부모 양쪽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잃어 편견을 갖고 성장하게 되고, 부모 모두를 싫어하게 되어 결국 가정에서 등 돌리고 멀어지게 된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부모 같은 존재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만 문제 해결 능력도 없는 정치인들끼리 싸움하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목격한 국민이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정치 냉소주의에 빠진다는 공식은 공통이다.

야당은 일찌감치 외부에 적을 만들어 놓고 내부를 단속하는 매우 고전적인 수법을 쓰고 있다. 그들의 표현대로 대통령이라는 ‘정적’과 ‘극악무도한 검찰 독재’에 맞서려니 그들의 총구는 내부를 겨눌 여력이 없다. 그렇게 밖으로 향한 그들의 총구도 국민은 전혀 달갑지 않다. 분노에 눈먼 유탄이 어디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디 총 쏠 곳이 없어서 거리로 나와 총질인가. 대체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은 왜 총밖에 쏠 줄 모르는 걸까.

얼마 전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후세에 칭송받는 정치를 한번 해보자며 “20여 년 전 어느 대기업 회장이 한국 정치는 4류라고 해서 파문이 인적이 있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도 우리 정치가 여전히 4류임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세간의 평가는 좀 다르다고 전해드리고 싶다. 과거에는 적어도 ‘4류’는 되었는데, 요즘 정치에는 ‘류’조차 사라졌다고 한다. 칭송 이전에 ‘4류’의 품격이라도 회복하는 게 우선이다. 일단 내부 총질과 방탄 국회만 자제해도 좀 나아질까 모르겠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3/02/24/2KSVO45YGZH5PAVFZ56GYQI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