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래건 기자
입력 2023.05.15. 03:00 업데이트 2023.05.15. 10:32
개인정보 부당 요구 적발 늘어
구직자 A씨는 작년 9월 서울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에 들어가려고 홈페이지에서 입사 지원서를 내려받았다. 그런데 지원서에는 키·몸무게·혈액형·종교를 적는 칸이 있었다. 소프트웨어 개발과 무관한 개인 정보를 적으라는 것이었다. 구직자 B씨도 작년 10월 냉동 창고 관리 직원을 뽑는 데 응모하려 했더니 결혼 여부를 써내야 했다. 2014년 도입된 채용절차법은 구직자의 신체 조건이나 출신, 결혼, 재산, 가족 직업 등을 지원서에 적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어기면 300만~5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그러나 개인 정보를 부당하게 요구하는 업체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14일 고용노동부가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3월까지 업무와 상관없는 개인 정보 요구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건수는 총 141건이다. 2021년 26건이었지만 2022년 60건으로 뛰었고 올해는 석 달 만에 55건을 기록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청년 세대는 개인 정보 보호에 관심이 많은데 기업들 인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정부에 적발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면접 현장에서 개인 정보를 부당하게 물어보는 것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채용절차법에도 종교와 혈액형을 적으라고 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간호조무사 C씨는 최근 병원 면접을 갔다가 병원장에게 “부모님 직업은 뭐냐, 어디 사느냐, 남편의 직장과 연봉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다른 병원 면접에선 “집이 자기 소유인지, 전세인지 알려달라”는 말을 들었다. 병원 업무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개인 정보였지만 채용절차법상 면접 질문에 대한 제한은 없는 실정이다. 채용 공고에 성차별적 요소가 들어가는 것도 고질적 문제다. 고용부가 작년 9월부터 취업 사이트에 올라온 채용 공고 1만4000건을 점검한 결과 811건(5.8%)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적발했다. “키 172㎝ 이상의 훈훈한 외모 남성” “여성 우대” 등을 내건 경우다.
채용 공고와 실제 근무 조건이 다른 사례도 적지 않았다. 경남의 한 요양 병원은 2021년 11월 행정 직원을 ‘정규직’으로 뽑겠다고 공고를 냈다. 그런데 지원자가 일하겠다고 하자 ‘계약직 6개월 후 문제가 없으면 정규직으로 해주겠다’고 말을 바꿨다. 서울의 한 한방 병원은 작년 2월 복리 후생 조건으로 ‘아침·점심·저녁 제공’을 약속했다. 실제로는 구내식당의 한 끼당 1만원인 식사를 4500원으로 할인해 주는 것이었다. 고용부 관계자는 “면접 때 부당한 개인 정보를 요구하는 문제 등을 고치기 위해 채용절차법을 대폭 강화한 공정채용법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환 의원은 “기업들의 과도한 정보 요구로 인한 피해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사회·근로 환경 변화 등을 고려한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원글: https://www.chosun.com/national/labor/2023/05/15/XNO2TLLTZFHRDBRQ5K45VNG3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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