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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군단장이 ‘병사 민원 채팅방’ 여니… “여친 떠나 힘들어” “훈련 언제 끝나요?”

고유찬 기자
입력 2023.05.23. 03:00 업데이트 2023.05.23. 08:40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병사와 직접 소통은 긍정적 시도… 사건·사고 은폐 불가능해질 것
장군이 사소한 일까지 보고받아 중간에 낀 간부 고충 커질 수도”

/일러스트=이철원

“네, 편하게 이야기하세요” 지난 18일 오후, ‘1군단 오픈채팅방’이라는 이름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강호필 1군단장님 맞으신가요?”라는 메시지를 남기자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위와 같은 답장이 돌아왔다. 답장을 보낸 이는 강호필 육군 1군단장. 우리나라에 33명뿐인 삼성(三星) 장군이다. 군단장 산하에는 약 5만명의 장병이 있다.

강 군단장이 이와 같은 오픈채팅방을 운영한 건 2년 전부터다. 당시는 1사단장이었던 강 군단장은 병사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기 위해 오픈채팅방을 만들었다고 한다. 병사들의 휴대전화 영내 사용은 2020년 하반기부터 허용됐다. 강 군단장은 “최근에는 오픈채팅방을 통해 하루에 적어도 1건 이상 민원이 들어온다”며 “장병들이 쉽게 말하기 힘든 고민을 털어놓거나 궁금한 점을 묻기도 한다”고 했다. 병영 내 부조리나 제도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민원이 많지만 “여자 친구와 헤어졌는데 힘들다” “훈련이 언제쯤 끝나는지 알고 싶다”는 등의 내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 군단장은 1군단장으로 부임한 작년 12월부터, 부대장들에게도 이와 같은 오픈채팅방 운영을 적극 권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1군단 내 부대장들 또한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병사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본지 취재 결과 1사단장과 25사단장, 1포병여단장, 2기갑여단장 등 1군단 예하 다수 부대장이 오픈채팅방을 직접 운영하고 있었다. 군 관계자는 “1군단 예하 부대뿐 아니라 전국 각지 여러 부대에서도 이처럼 오픈채팅방을 운용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강 군단장 행보에 대한 시선은 엇갈린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리더십의 핵심은 듣는 것”이라며 “참모의 벽을 깨고 장군들이 직접 병사들과 소통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긍정적인 시도”라고 했다. 각종 사건·사고를 은폐하려는 시도 자체를 불가능하게 해 군내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전인범 예비역 육군 중장은 “자칫하면 군의 생명과도 같은 지휘 계통에 혼선이 야기될 수 있어 무척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장군들이 사소한 일까지 보고받아 행정력이 낭비되고, 중간에 낀 간부들이 고충을 겪게 된다는 지적도 있다. 올해 초까지 1군단의 한 보병부대에서 복무했던 김모(26)씨는 “오픈채팅방을 통해 군단장에게 부대 변기가 막혔다는 등의 사소한 민원을 제보한 병사도 있었다”며 “이를 조치하라는 군단장 전화 한 통에 부대가 발칵 뒤집히고 간부들이 전전긍긍했다”고 했다.


강호필 육군 1군단장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위원
     

원글: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3/05/23/QVKNCP4TSJH3DJPB7QGSZIL2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