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 논설위원
입력 2023.06.08. 21:02 업데이트 2023.06.08. 23:22
어느 분이 만날 때마다 농막(農幕) 자랑을 하면서 꼭 한번 놀러 오라고 성화를 부렸다. 농막이라고 해서 허름한 간이 시설을 상상했다. 가보니 면적 규정(20㎡·6평)에 맞춰 침실, 화장실, 부엌까지 다 갖춘 조립식 주택 형태여서 놀랐다. 지인은 주중은 서울에서, 주말 이틀은 이 농막에서 지내는 ‘5도2촌’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작은 테라스에 서니 앞에 강이 흐르고 멀리 산이 보이는 경치가 펼쳐져 또 한번 감탄했다.
▶도시 생활에 지쳐 주말에라도 자연에서 보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다. 전원 생활을 꿈꾸지만 당장 삶의 터전을 옮기기는 어려운 사람들, 비용 때문에 세컨드 하우스나 별장은 꿈꿀 수 없는 사람들에게 6평 농막은 훌륭한 대안이자 로망이었다. 전국 농막 설치 건수가 2014년 9175건에서 2021년 4만6057건으로 약 4배로 늘어난 이유일 것이다.
▶러시아 도시민의 70%는 주말이나 휴가철에 머무르는 ‘다차’가 있다. 감자·오이·토마토 같은 채소는 대부분 다차 텃밭에서 직접 길러 먹는다. 스웨덴 국민의 약 55%는 자연에 위치한 ‘여름집’에서 휴가를 보낸다. ‘클라인 가르텐(작은 정원)’은 독일인 절반을 행복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 이 텃밭에 농막을 짓고 채소 등을 길러 먹는다. 인구에 비해 국토가 넓은 나라들 얘기지만 우리도 산악이 국토의 70%인 나라다. 전원 생활을 누릴 공간은 있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 농막을 쓰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농막에 대해 ‘20㎡ 이하’라는 면적 규제만 있었는데 농림부가 ‘야간 취침 금지’ ‘휴식 공간은 농막의 25% 이하’ 등 규제를 추가하는 농지법 시행규칙 예고안을 발표했다. “농막을 별장처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다. 사실상 농막 금지법과 같은 내용이어서 농막을 갖고 있거나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뉴스가 됐다.
▶농막을 불법 증축하거나 호화롭게 꾸며 별장처럼 사용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농림부가 걱정하는 농지 훼손도 문제다. 하지만 호화 별장, 농지 훼손을 막으면서 도시인의 로망도 살리는 묘안은 없을까. 더구나 농막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올해부터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늘리기로 한 ‘생활 인구’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생활 인구는 주민등록 인구만 아니라 하루 3시간 이상, 월 1회 이상 머무는 사람도 넣는 개념이다. 농촌 소멸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현실에 맞게 농막 규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3/06/08/O2BYJUKPFZCQBIOHECUINL4X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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