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입력 2023.07.31. 03:00
그이는 잔에
커피를 담았지
그이는 커피잔에
우유를 넣었지(…)
그이는 커피를 마셨지
그리고 그이는 잔을 내려놓았지
(…) 그이는 일어났지
그이는 머리에
모자를 썼지
그이는 비옷을 입었지
비가 오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이는
빗속으로 가버렸지
말 한 마디 없이,
나는 보지도 않고
그래 나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어 버렸지.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évert)
(김화영 옮김)
때는 아침, 장소는 카페인가 가정집인가? 적당히 붐비는 카페는 헤어지기 좋은 장소이다. 짧게 끊긴 문장들이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시나리오 같은 시. 한 행의 길이가 아주 짧다. 커피를 마시고 빗속으로 떠난 남자의 몇 분간을 카메라처럼 담담하게 묘사했다. 자크 프레베르(1900~1977)는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영화 제작에도 참여했다.
해가 쨍쨍하다고 이별이 덜 슬픈 것은 아니나, 이별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엔 대개 비가 등장한다. 비를 맞지 않으려 모자를 쓰고 비옷을 입은 빈틈없는 남자. 비처럼 거추장스러운 감정이 침투할 틈을 주지 않으려 말없이 떠나는 그를 보고 마지막에 감정이 폭발한다.
아침 식사라는 제목도 재미있다. 아침에 식사 대신 ‘이별’을 먹고 눈물을 흘려야 했던 사람의 가련한 이야기를 분절된 언어와 영화적인 구성을 차용해 참신하고 현대적인 시로 승격시켰다.
자크 프레베르![]() |
김화영![]() |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3/07/31/B3BGODPCKRD3NIOSPK4ODAFM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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