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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인권 우선에 범죄 대응 약화… ‘큰 벌 안받는다’ 신호 줘

송원형 기자 이세영 기자
입력 2023.08.08. 03:05

 

범죄자 인권 강화 25년이 남긴 것

일러스트=이철원

지난달 서울 신림역 ‘묻지 마 흉기 난동’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존댓말을 사용한 것과 관련, 과거 정부가 범죄자 인권을 강화한다며 범죄 대응을 약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면서 ‘극악한 범죄를 저질러도 경찰이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사형이 확정돼도 집행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신호를 범죄자들에게 전달해 왔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것은 1997년 12월이다. 다음 해인 1998년 2월 출범한 김대중 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사형 집행은 한 건도 없다. 교회에 불을 질러 15명을 죽게 하고 25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사형이 확정된 A씨 등 59명이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상태로 수감돼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국민 다수는 사형제를 유지해야 할 뿐 아니라 실제로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21년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1007명 중 779명(77.3%)이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사형 유지 의견(779명) 중 95.5%는 흉악범에게는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헌법재판소도 1996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사형제는 합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한 법조인은 “사형을 전혀 집행하지 않는다면 극악한 범죄를 저질러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범죄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지 않게 된 것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로 경찰청이 ‘인권 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 규칙’을 만들어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지 않게 했다. 그러자 “현행범으로 붙잡힌 흉악범이라도 인권 보호를 명목으로 신상 공개를 막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후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성폭력범죄특례법과 특정강력범죄처벌특례법이 제·개정되면서 살인, 강도, 강간 등 일부 범죄자에 대해 기소되기 전에만 신상 공개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신상 공개 대상이 되는 범죄의 범위가 너무 좁고 재판에 넘겨진 뒤에는 신상 공개를 못 하는 등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작년 5월 발생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도 1·2심 재판에서 모두 유죄를 받았지만 신상 공개가 되지 않으면서 논란이 됐다.

그래픽=이철원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에 제정된 경찰관 직무 규칙에는 범죄 현장에서 경찰관의 무기 사용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로 인해 경찰관이 흉기를 휘두르는 범인을 제압하는 과정에 무기를 썼다가 형사 처벌이나 민사 소송을 당할 것을 우려해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흉기로 난동 부리는 범죄자를 앞에 두고 경찰관이 3회 이상 ‘흉기 버려라’라고 고지해야 한다는 의무 등에 집착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면서 “범죄자 인권을 강화한 만큼 경찰관의 물리력 행사도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준태 교수

원글: https://www.chosun.com/national/court_law/2023/08/08/OVXBGJKPLBHABPVZWCUVYAPA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