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수 논설위원
입력 2023.11.23. 21:10 업데이트 2023.11.23. 23:02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최백호 ‘낭만에 대하여’) 도라지 위스키는 1950년대 밀수로 유통되던 일본 산토리의 ‘도리스 위스키’의 이름만 따서 만든 가짜 위스키였다. 부산 국제 양조장에서 소주에 색소를 넣어 만들었다. 상표 도용 시비 끝에 이름을 ‘도리스’에서 ‘도라지’로 바꿨다. 노랫말처럼 다방에서 도라지 위스키를 탄 위스키 티를 비싸게 팔았다.
▶요즘 국내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 일본 위스키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몇 달 전 일본 여행을 갔다가 할인점 주류 코너를 찾았다. 직원이 필자를 보자마자 ‘히비키, 야마자키 아리마센(없습니다)”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한국인들이 얼마나 이 술들을 찾으면 저럴까 싶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생각일까. 산토리가 내년 4월부터 히비키 30년, 야마자키 25년 소매가를 16만엔(약 140만원)에서 36만엔(약 315만원)으로 한 번에 125%나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 다케쓰루 마사타카는 이런 미래를 예상했을까. 일본 양조장집 아들이 스코틀랜드에서 양조법을 배워와 산토리 창업자와 손잡고 1929년 첫 일본 위스키를 선보였다. 일본 주당들은 “탄내(피트향)가 난다”고 외면했다. 산토리 창업자는 다케쓰루와 결별하고 피트향이 덜 나는 순한 위스키를 만들어 냈다. 고집 센 다케쓰루는 홋카이도로 가서 피트향 강한 위스키를 계속 만들었다. 일본이 위스키 강국이 된 것은 두 사람의 열정 덕분이다.
▶1990년대 버블 붕괴는 일본 위스키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생산량이 급감, 2008년에는 전성기의 20%대로 떨어졌다. 고심하던 산토리는 위스키에 탄산수를 섞는 ‘하이볼’을 고안, 새 수요를 창출해 냈다. 2015년 ‘야마자키 싱글 몰트’가 세계 1위 위스키로 선정되자 일본 위스키의 위상이 달라졌다. 수요가 급증, 위스키 원액이 부족해졌다. 산토리는 한정된 원액을 야마자키와 하이볼에 집중 투입하고, ‘히비키 17년’ 같은 제품은 출하를 중단했다.
▶공급 부족 탓에 일본 위스키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600년 역사의 스코틀랜드 싱글몰트 위스키보다 100년 역사의 야마자키가 더 비싼 몸이 됐다. 양질 원액은 이미 동이 났는지 2015년 이후엔 일본 위스키가 세계 최고 명단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히비키 21년’ 빈병이 20만원에 팔릴 정도로 ‘희귀품’ 대접을 받는다. 조만간 ‘재팬 위스키 버블’이란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다케쓰루 마사타카![]() |
도라지 위스키![]() |
도리스 위스키![]() |
하이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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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자키 25년![]() |
야마자키 싱글 몰트![]() |
히비키 17년![]() |
히비키 21년![]() |
히비키 30년![]() |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3/11/23/6IMIZMLC6BGWBGPFRUTXJFAD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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