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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냄비 물 더 끓어… ‘개구리’ 한국경제 빨리 꺼내 큰 틀 새로 짜라”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의 ‘개구리 한국경제’ 보고서
안중현 기자
입력 2023.12.11. 16:21 업데이트 2023.12.12. 07:31

일러스트=이철원


지난 2013년 “한국 경제가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한국 경제를 서서히 가열되는 ‘냄비 속 개구리’에 비유해 큰 주목을 받은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가 10년 만에 후속 보고서를 냈다. 맥킨지는 11일 ‘한국의 다음 상승 곡선(Korea’s next S-curve)’이라는 보고서에서 “노동 생산성 감소와 국가 기간산업의 글로벌 경쟁 심화 등으로 냄비 속 끓는 물의 온도가 더욱 올라갔다”면서 “끓는 물의 온도가 내려가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과감하게 끓는 물 속 개구리를 냄비 밖으로 꺼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한국 경제의 큰 틀을 대대적으로 바꿔야 새로운 도약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맥킨지는 “개구리가 더 큰 무대에서 맘껏 뛰어놀 수 있게 틀을 짜야 한다”면서 “과감한 시도와 변화가 한국을 2040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 7만달러, 세계 7대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선도 기술 8년 만에 36개에서 4개로 급감

맥킨지는 현재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낮은 노동 생산성과 산업 경쟁력에서 찾았다. 한국의 주당 노동 시간은 36.9시간으로 미국(34.6), 영국(29.3), 독일(25.7) 등 선진국보다 길지만, 근로시간당 GDP는 52.4달러로 독일(87.3), 미국(87.2), 영국(74.3)보다 현저히 낮다. 고용 인력의 20%를 차지하는 상위 10대 그룹이 GDP의 60%를 차지하는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노동 생산성 격차도 경제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맥킨지는 “한국이 다른 선진국보다 덜 생산적인 방식으로 더 오랜 시간 일하거나 한국의 산업 구조가 저부가가치 부문에 치중돼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의 산업 경쟁력도 약화하고 있다. 2012년에는 국가전략기술 120개 중 ‘초정밀 디스플레이 공정 및 장비 기술’ ‘초고집적 반도체 공정 및 장비 기술’ 등 36개 분야에서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도’ 수준으로 평가됐다(한국과학기술평가원). 하지만 2020년엔 ‘대용량 장수명 이차전지 기술’ 등 4개 분야에서만 선도적 수준으로 평가됐다. 반면 ‘후발’로 평가되는 분야는 같은 기간 1개에서 13개로 증가했다. 맥킨지는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 등 후발국이 빠르게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면서 “한국이 기술력을 적극적으로 키우지 않는다면 국가 차원의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AI 고급 인력 5만명 필요한데 5000명뿐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맥킨지는 우선 대대적인 산업구조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선, 자동차·모빌리티, 소비재 등 한국의 주력 제조업들은 그동안 한 업종에 집중하는 수직 계열화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융·복합 시대에는 다른 업종과 협업하는 식으로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율 운항 선박은 자율 주행,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첨단 센서 등 다양한 기술이 결합돼야 한다. 조선 업체가 모든 기술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문 기술을 가진 기업·스타트업과 협력해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구조 개편을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맥킨지는 강조했다. 소프트웨어, 콘텐츠 및 플랫폼 등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에너지, 제약·바이오, 패션·섬유 등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갖고 있으면서 고성장이 기대되는 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원천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맥킨지는 챗GPT가 촉발한 생성형 AI(인공지능)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AI 고급 인력 5만명을 육성하는 등 인재 육성에도 힘써야 한다고 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7년까지 AI 인력 수요는 6만6000명에 달하지만, 공급은 5만3000명에 그치고, 이 중 고급 인력은 5000명 수준에 불과하다. 맥킨지는 “기술 장벽이 높고 발전 속도가 빠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급 인력을 중심으로 한 AI 핵심 인재 확보 방안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밝혔다. 보고서를 총괄한 송승헌 맥킨지 코리아 대표는 “한국 경제는 이제 퇴로가 없다”면서 “대한민국이 살 수 있는 길은 급진적이고, 과감한 변화뿐”이라고 말했다.

송승헌

원글:https://www.chosun.com/economy/economy_general/2023/12/11/JBMYXQJGINBHNEZU35EF2LL22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