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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노래가 돌아보게 한 가족 사랑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3.12.29. 20:58 업데이트 2023.12.30. 02:23

일러스트=이철원


가수 김목경은 20대 시절 부모 슬하를 떠나 영국에서 공부했다. 주말이면 맞은편에 사는 영국 노부부 집에 아들 내외와 손주들이 방문하는데, 아들네가 돌아갈 때면 부부가 밖에 서서 오래 배웅했다. 그걸 보고 만든 곡이 국민 애창곡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다. ‘막내아들 대학시험 뜬눈으로 지새우던 밤들/ 큰딸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방울이 모두 말라/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김목경은 “여러 해 뵙지 못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만든 곡”이라고 했다. 이 곡을 몇 해 전 임영웅이 ‘미스터트롯에서 다시 불렀는데 올 상반기까지 유튜브 누적 조회 수가 1억뷰를 넘었다.

▶가난한 집 막내로 태어난 가수 김광석도 이 노래에 마음을 빼앗겼다.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막내아들 대학 시험~’ 대목에서 부모 생각에 목이 메었다. 그 길로 김목경을 찾아가 “나도 부르고 싶다” 했다. 한 지인의 부인은 ‘칠갑산’에서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이 시작되는 대목만 들으면 울컥해진다고 했다. 저마다 마음속에 간직한 가족의 사연을 노래의 특정 가사가 비춰주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의 애창곡 리스트엔 부모와 자녀의 사랑을 노래한 명곡이 즐비하다. ‘불효자는 웁니다’(진방남), ‘기러기 아빠’(이미자) 같은 옛 노래부터 ‘어매’(나훈아) '사모곡’(태진아)을 거쳐 X세대 노래인 ‘아버지와 나’(신해철)‘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이한) 등으로 이어진다. 유튜브엔 이런 곡들을 모은 ‘부모님을 그리는 노래’ 등이 수십만~수백만 조회 수를 올릴 만큼 인기다.

▶그제 ‘미스트롯3′에 출연한 9세 소녀 이수연이 2년 전 세상을 떠난 아빠를 위해 나훈아의 ‘울아버지’를 불렀다. ‘울 아버지 울 아버지 보고 싶어요~’라고 노래한 뒤 감정이 북받쳤는지 “아빠가 돌아가셔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걸 본 아빠들이 ‘이수연 어린이는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을 울리면서 모든 아버지의 딸이 되었다’는 응원 댓글을 달았다. 지난주 이미자의 ‘모정’을 불러 TV 앞에 모인 이들을 울린 빈예서양과 함께 이 연말, 가족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아이콘이 됐다.

▶며칠 전 불이 난 아파트에서 어린 딸을 안고 뛰어내려 자식을 살리고 하늘로 간 아빠 뉴스가 온 국민을 울렸다. 한 해의 끝에 빈예서·이수연 두 소녀가 부른 노래도 내 부모, 내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돌아보게 한다. 노래가 고맙고, 불러준 가수가 고맙다. 새해에는 가족을 더 많이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

김목경
이수연
빈예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곱고 희던 두 손으로
넥타이를 메어 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 아들 대학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 딸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 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감에
흰머리가 늘어가네
모두 다 떠난다고
여보 내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올 그 먼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칠갑산
콩밭 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불효자는 웁니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못 믿을 이 자식의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님이 드디어 이 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니

북망산 가시는 길 그리도 급하셔서
이국에 우는 자식 내몰라라 가셨나요
그리워라 어머님을 끝끝내 못 뵈옵고
산소에 엎푸러져 한없이 웁니다
기러기 아빠
산에는 진달래 들엔 개나리
산새도 슬피우는 노을진 산골에
엄마구름 애기구름 정답게 가는데

아빠는 어디갔나 어디서 살고 있나
아- 우리는 외로운 형제 길잃은 기러기

하늘에 조각달 강엔 찬바람
재너머 기적소리 한가로운 밤중에
마을마다 창문마다 등불은 밝은데

엄마는 어디갔나 어디서 살고 있나
아- 우리는 외로운 형제 길잃은 기러기
어매
어매 어매 우리 어매 뭣할라고 날 낳았던가
낳을라거든 잘 낳거나 못 낳을라면 못 낳거나
살자하니 고생이요 죽자하니 청춘이라
요놈 신세 말이 아니네
어매 어매 우리 어매 뭣할라고 날 낳았던가
님아 님아 우리 님아 소갈머리 없는 님아
겉이 타야 님이 알제 속만 타면 누가 아나
어떤 놈은 팔자 좋아 장가 한 번 잘도 가는데
몹쓸 놈의 요 내 팔자
어매 어매 우리 어매 뭣할라고 날 낳았던가
어매 어매 우리 어매 뭣할라고 날 낳았던가
사모곡
앞산 노을질때까지 호미자루 벗을 삼아
화전밭 일구시고 흙에 살던 어머니
땀에 찌든 삼베적삼 기워 입고 살으시다
소쩍새 울음따라 하늘가신 어머니
그 모습 그리워서 이 한 밤을 지샙니다

무명치마 졸라매고 새벽이슬 맞으시며
한평생 모진 가난 참아내신 어머니
자나깨나 자식 위해 신령님전 빌고빌며
학처럼 선녀처럼 살다가신 어머니
이제는 눈물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자나깨나 자식위해 신령님전 빌고빌며
학처럼 선녀처럼 살다가신 어머니
이제는 눈물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아버지와 나’(신해철)
아주 오래 전 내가 올려다 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내 키가 그보다 커진 것을 발견한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살아 나갈 길은
강자가 되는 것 뿐이라고 그는 얘기했다
난 창공을 날으는 새처럼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내 두 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내 날개 밑으로 스치는 바람 사이로
세상을 보리라 맹세했다
내 남자로서의 생의 시작은
내 턱 밑의 수염이 나면서가 아니라
내 야망이 내 자유가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 받고 돈 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 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 뿐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를 흉 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
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듯
그의 모습을 닮아 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두렵다
언젠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섭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쯤에야 이루어질까
오늘 밤 나는 몇 년 만에
골목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해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울아버지
1. 
조각배에 실려 가는 초승달을 보면
인자하신 아버지가 불현듯 떠오릅니다.
등에 한 짐 지시고 오르던 언덕 그 길에
찔레꽃 호박꽃도 그대로인데
아버지만 늙으셨어요.
아 아버지 오늘따라 울 아버지
보고 싶어요.
2. 
저 산 넘어 언덕길에 텅 빈 버스 정거장
행여 자식 올까 봐 온종일 바라보셨죠.
저녁노을 어둑어둑 집으로 들어가실 때
막걸리 한 사발로 속 달래시며
눈물을 훔쳐내셨던
아 아버지.
울 아버지 울 아버지
보고 싶어요.
아 아버지.
울 아버지 울 아버지 오래오래 사세요.
모정
(대사)
낯선 타국 바다 건너 열 세 살 어린 네가
오직 한번 꿈에 본 듯 다녀간 이날까지
기다리던 스무 해 모진 목숨은 백발이 되었네
하늘 끝 저 멀리에 소리쳐 불러봐도
구슬픈 메아리에 들리는 너의 이름
철새도 봄이면 돌아오는데
떠나버린 내 아들은 소식도 없네

[철없는 너를 이국 땅 낯선 곳에 피눈물로 보내놓고
만고 고생 다 시킨 못난 어미를 용서해다오
어린 네가 뼈아프게 번 돈 푼푼이 모아
이 어미 쓰라고 보내주면서
눈물에 얼룩진 편지에다
부모님 오래오래 사시라고 간곡히도 이르더니
강물 같은 세월은 흘러만 가는데
보고 싶은 내 자식은 어이되어 오지를 않네
어제도 오늘도 너 기다리다 병든 몸
지팡이에 온 힘을 다하여 언덕에 올라가
아랫마을 정거장에 내리는
그림자를 지켜보고 섰는데
너는 왜 돌아오지 않느냐 강이야 강이야]

불효 자식 기다리다 늙으신 어머니여
오매불망 쌓인 뜻을 이제야 풀려는데
자식 걱정 한평생 그리움 안고 별나라 가셨네
죄 많은 뉘우침을 천만번 굽으소서
무정한 긴긴 세월 가슴이 메입니다
생전에 못 다한 자식의 도리
어머님 영전에서 흐느낍니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3/12/29/6526Y7F3NJB5HEBVI56I6X6NPM/